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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몸을 숙인 채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숨을 쉬면서 자기 발 옆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루스가 추위에 얼어 죽은 가엾은 짐승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루스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컬러 잡지, 그러니까 ‘스티브의 잡지’같은 것이 아니라 신문에 무료로 끼워지는 밝고 경박한 잡지였다. 광택 있는 종이에 양면 광고가 게재된 부분이 펼쳐져 있었는데, 종이가 물에 젖고 한쪽 귀퉁이에 진흙이 묻었지만 내용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칸막이를 최소한으로 줄인 아름답고 현대적인 개방형 사무실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무실과 사람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스는 곁에 와 있는 내게 말했다.
  “‘저런 곳’이야말로 일하기에 ‘적당한’ 장소 같아.” (p.202)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2005)].
  헤일셤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자라나고 있는, ‘기증’을 위해 복제된 아이들. 그 중 한 명인 루스는, 우연히 마주친 길가에 떨어져 있는 잡지에서 자신이 평소에 꿈꾸던 이미지를 발견한다. 아름답고 현대적인 개방형 사무실,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들, 활기찬 분위기. 그녀가 ‘근원자’를 찾아나섰을 때, 그녀의 ‘근원자’로 보이던 여자는 마치 그 잡지 속의 사진과 같이 커다란 유리창 너머 사무실 안에서 사람들과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 받고 있다. 루스와 그녀의 일행은 유리창에 기대 사무실 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곳은 멋지고 아늑하고 안정된 세계의 표상처럼 보였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루스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 대형 사무실 안에서 그녀의 ‘근원자’를 찾는 모습에, 대기업 사무직을 동경하는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증’의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클론들의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섬세하게 서술한다. 여기, 도서관에서 토익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있는 학생들,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착취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착취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취업 준비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그들은 경쟁의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래서야 결국 소모되고 버려지는 복제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복제인간을 다룬 소설 중, [나를 보내지마]와 같이 잔잔한(?) 문체의 SF 소설로는 샤를로테 케르너의 [블루프린트(Blueprint, 1999)]가 있다. [나를 보내지마]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캐시의 나이는 서른한 살이다. [블루프린트]에서 피아니스트 이리스 셀린은 서른한 살의 나이에 그녀의 클론, 시리 셀린을 갖게 된다. 시리는 서른한 살의 나이에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을 연다. ‘서른한 살’에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시리 셀린, 시리. 영어 원문으로는 Siri.

  Carey Mulligan… “Never let me go”와 “Drive”  

ca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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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길고 곧은 해안 도로를 따라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눈 앞에 포석이 깔린 젖은 길이 죽 이어져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잠시 후 약 30미터 앞에 밴 한 대가 와서 서더니 차에서 광대 복장을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차의 뒷문을 열어 한 박스 정도 되는 헬륨 풍선을 꺼내서는 한 손으로 잡은 채 몸을 숙이고 다른 손으로 차 안을 여기저기 뒤적거렸다. 좀 더 다가가자 그 풍선들에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귀 모양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부족 무리 같은 풍선들이 주인이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위에서 건들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광대는 몸을 일으키고 차 문을 닫은 다음 한 손에는 작은 수트 케이스를 들고 다른 손에는 풍선을 든 채 나보다 몇 걸음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곧고 길게 뚫려 있는 해안 도로를 걷는 그 시간이 내게는 까마득히 오랜 세월처럼 여겨졌다. 때때로 나는 그런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심지어는 그 광대가 몸을 돌려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쪽으로 가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아침부터 줄곧 젖어있던 인적 없는 도로를 따라 그와 나는 계속 걸었고 그러는 동안 풍선들은 나를 내려다보며 웃으며 서로 몸을 부딪쳤다. 풍선 줄을 모아 쥔 남자의 주먹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풍선 줄을 한데 꼬아 단단히 쥐고 있었지만, 나는 줄 하나가 그의 손을 빠져나가 그 줄에 매달린 풍선이 구름 낀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나를 보내지마],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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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트럭이 날마다 공장을 떠난다. 하나는 창고와 백화점으로, 다른 하나는 쓰레기장으로.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첫번째 종류의 트럭만 주목하라고 우리를 훈련시켜왔다. 반면 두번째 종류의 트럭에 대해서 우리는 쓰레기 더미가 눈사태처럼 쓰레기 산으로부터 무너져 내려와 우리 뒷마당을 둘러싼 울타리를 뚫고 침범하는 경우에만 생각한다. 험한 지역, 더러운 거리, 도시 빈민굴, 망명자 수용소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제한 구역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런 쓰레기 산들을 현실에서든 생각에서든 찾지 않는다. 관광할 때 들떠서 모험을 하는 중에도 그런 지역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다닌다(또는 그런 곳을 피하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극히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한다. 즉 쓰레기를 보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든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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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하기로 했던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가 이제 하루 남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 새벽 6시에 시작해 오후 3시~ 3시반 종료. 마포구를 맡고 있는 4개의 청소대행업체 중 한 곳 소속으로 청소 지역은 연남동, 서교동, 동교동, 노고산동, 대흥동, 신수동. 소위 “홍대 앞” 전 지역을 담당하는 순찰조의 작업원 역할. 순찰조는 기사, 작업원 2인 1조로 1톤 트럭으로 이동하며, 야간에 청소차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생활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는) 및 재활용폐기물과 마대에 담겨 나오는 특수폐기물을 수거한다. 그 외에도 정기적으로 음식물쓰레기통을 갈아주는 일을 하고, 회사로 직접 접수되거나 구청을 통해 전달되는 각종 쓰레기 관련 민원을 처리한다. 

굉장히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이것도 야간 작업조에 비하면 세발의 피). 1톤 트럭에 쓰레기가 가득 차면, 폐기물 처리장이 있는 차고지로 이동해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생활쓰레기, 재활용폐기물, 특수폐기물을 각각 따로 처리).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이 싸이클이 세 번 정도 돌아가는 데 쉴 틈이 거의 없다. 일반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쓰레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봉투가 제대로 묶여 있지 않거나 터지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냄새도 심하고, 옷도 금새 더러워지기 쉽다. 뭐,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작업복이 더러워지는 일은 드물다. 늘 군화를 신고 일한다. 군화는 가볍지 않아 움직임이 편하진 않지만, 특수폐기물의 경우 깨진 유리, 부러진 나무, 못 등 다치기 쉬운 것들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작업용 신발로 적격이다. 내용물에 따라 다르지만 100리터 쓰레기봉투는 대부분 무게가 꽤 나간다. 특수폐기물이 담겨 있는 마대는 혼자 들기 힘든 경우가 많아 기사님과 함께 트럭에 옮겨 싣는다. 폭염 속에서 무거운 짐을 바쁘게 옮기려다 보니 잠깐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난다. 그래서 이동하는 트럭 안에서 수시로 물을 마신다. 체중이 많이 줄었다.


도시는 매일 새로워지면서 단 하나의 결정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완전히 보존해 나갑니다. 바로 그저께의, 그리고 매달, 매년, 십 년전의 쓰레기들 위에 쌓이는 어제의 쓰레기 더미 형태로 말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p.149)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 회사에서 문서를 만들 때, 카페에서 글을 쓸 때,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때가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데 그것이 환경문제나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면 시원한 공간 속, 편안한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뭔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어제’ 거리에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고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렸더라도 당장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내가 그저 적당히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적어도 이번 기회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뭔가 온몸을 이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들여다 보고 있거나 TV나 인쇄매체의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다들 부질없는 소꿉장난에 열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물론 나도 그 “장난”에 자주, 기꺼이, 즐겁게 동참한다). 모두들 대단히 생산적이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고상하고 거창한 말들을 어설프게 조합한 댓가로 급료를 받는 것보다는 골목을 뛰어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 마음이 훨씬 편하다. 누군가를 속일 필요가 없는 일이고, 쉬이 감각의 극한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개미 안녕, 바퀴벌레 안녕, 구더기와 생쥐도 가끔 안녕. 동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이 다르지만,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는 매일 1순위로 순찰을 돌며 폐기물을 수거한다. 새벽 6시에도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쌓여있는 쓰레기 봉투들과 헤어짐이 아쉬워 서로 감싸안은 팔을 풀지 못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레네오 푸네스에 대한 보르헤스의 이야기는 마치 현대(성)의 기만적인 희망에 대한 임박한 부정을 예견하는 것만 같다.([쓰레기가 되는 삶들], p.41) 
나의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지요.(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픽션들],p.148)
 

차고지의 폐기물 처리장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수작업으로 폐기물 분류가 한 번 더 진행된다. 여기 계신 분들은 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하시는데, 언젠가 그 라디오에서 ELO의 Midnight Blue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쓰레기 더미, 그 사이사이로 허리를 숙인 미화원들, 그 풍경 위로 아름답고 몽환적인 멜로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혼자 여행 중 대구에 들렀을 때 동성로 타워레코드에서 Midnight Blue가 담겨져 있는 ELO의 ‘Discovery’ 앨범을 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CD플레이어로 ‘Discovery’를 들으며 매우 행복해 했던 기억. 대형폐기물이 쌓여있는 곳에서는 혹시라도 서핑보드가 버려지지 않았는지 매일 확인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주인공이 서핑 연습을 하다가 끌려와 보드복을 그대로 입은 채 쓰레기를 수거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화면 가득 푸른 바다. 말을 못 하는 두 연인이 수평선을 따라 함께 하염없이 걷고 있다. 가끔 쓰레기 더미 속에 CD와 비디오테이프들이 보인다.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의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버려진다. 

a scene at a sea

소비 사회의 소비자들은 쓰레기 수거인들을 필요로 하지만 소비자들 본인은 쓰레기 수거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들은 고생하기보다는 즐기도록 길러진 것이다. 그들은 권태로움과 고됨과 지루한 오락에 분개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들은 본인들이 하던 일을 대신해줄 도구를 찾도록 훈련받았다. 그들은 바로 쓸 수 있는 상품의 세계로, 즉석에서 만족감을 얻는 세계로 정신이 향하도록 조정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소비 생활의 기쁨인 것이다. 바로 그것이 소비주의가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더럽거나 고되거나 진저리나거나 그저 재미없는 ‘즐겁지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은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소비주의가 일련의 연속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쓰레기 수거인의 필요성은 증대하지만 쓰레기 수거인이 되려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p.114)

왜 외상 구매와 빚을 질 기회가 몹시 필요한 것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열성적으로 제공되며, 그토록 기쁘고 감사하게 수용되는가?…  그것은 우리의 욕구, 욕망이나 필요를 더 빨리 그리고 더 철저히 만족시켜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비록 휘몰아치는 수요 공급 게임의 속도는 다시 생각하는 것을 거의 허용치 않지만) 외상 거래의 용이성이 주는 주요한 이점은 더이상 욕구와 욕망의 필요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들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볼 때, 일단 외상으로 물건을 사고 빚 속에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면(‘빚을 지지 않으면 돈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빚을 지는 것은 ‘현명한 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외상과 빚은 욕망의 대상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것들이 쓰레기 더미로 가는 여정을 더욱 용이하고 빠르게 한다. 외상과 빚으로 사는 방법이 손 닿는 곳에 늘 있는데 왜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는’ 것에 매달려 있겠는가? 외상과 빚은 쓰레기의 산파 역할을 하며,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소비 사회에서 외상과 빚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가장 뿌리 깊은 근거이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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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D[ear] D[ollie]),

난 지금 헬름홀츠(Helmholtz)의 책을 덮고 이제 헤르츠(Hertz)의 전기력 전파 부분을 다시 세심히 보고 있는 중이야. 전기동역학에서의 최소작용원리를 다룬 헬름홀츠의 논문이 잘 이해가 안됐거든. 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이 오늘날 얘기되는 방식으로는 실재에 부합할 수 없다는 확신이 점점 들고 있어. 또 그것이 보다 간단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에테르”라는 용어가 전기 이론에 도입되면서, 그 운동이 기술될 수 있는 매질 개념도 따라오게 됐잖아. 그런데 내 생각엔, 그 매질에 물리적 의미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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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라니 ㅋㅋ
지난 학기에 읽었던 번역서 내용 중에 최고의 번역 임팩트.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프리즘 : 역사로 과학 읽기]라는 책에 과학사학자 Peter Galison의 논문, ‘아인슈타인의 시계들 : 시간의 장소(Einstein’s Clocks: The Place of Time, 번역 : 정동욱)’가 실려있다. 이 글 안에 아인슈타인이 1899년 8월의 어느날, 애인 밀레바 마리치에게 보넀던 편지의 일부가 실려 있는데 위에 옮겨적은 것이 바로 그 편지 내용이다. “D[ear] D[ollie]“라는 내용을 “자기야”라고 번역한 건 너무 오바한 게 아닌가 싶어 궁금한 마음에 피터 갤리슨이 편지 내용을 발췌해 온 영문 번역판을 찾아봤다. 그가 인용한 내용은 편지의 중간 부분인데, “난 지금 헬름홀츠…” 바로 앞 문장이 다음과 같다. 

“You are such a robust girl and have so much vitality in your little body.”

아하.

대형 시계탑들로 둘러싸인 베른의 도심 환경, 특허국에서 “시간 조율 시스템” 관련 특허들을 처리했던 업무 경험이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분석하는 피터 갤리슨. 20세기 초반, 대도시에서는 시계탑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산업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간의 통합이 반드시 필요했던 시대. 지역마다, 사람들마다 다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하나로 조율하기 위해서는 시계탑의 역할이 중요했다. ‘아인슈타인의 시계들’을 읽을 무렵 마침 영화 <Hugo>의 원작 동화 [위고 카브레]를 같이 읽고 있었다. 위고가 맡고 있던 일은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탑들의 시간을 하나로 조율하는 것. [위고 카브레]는 텍스트와 그림, 영화 스틸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스틸이 영화<Safety Last>에서 Harold Lloyd가 대형 시계탑 시계 바늘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다. 갑자기 이 사진을 마주쳤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고, 이내 너무 서글퍼졌다. 근대적 시간의 탄생과 이제 시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safety last 

그리고 은하영웅전설-

제국령이든 동맹령이든, 자전하는 행성은 밤낮의 교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천체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주기를 가진 것이 없어, 어떤 행성의 자전주기는 18시간 반, 다른 행성은 40시간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주장한다…난감한 것은 오히려 21시간 반이나 27시간처럼 지구에 가까운 자전 주기를 지닌 행성이다. 이런 경우 시행착오 끝에 자전주기를 24등분해 행성지방시를 사용하는 경우와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고 표준 24시간제를 사용하는 경우로 나뉘었다. 어느  쪽이건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24시간이 하루, 365일이 1년. 흔히 말하는 이 ‘표준력’은 제국에서도 동맹에서도 쓰인다. 은하제국의 1월 1일은 자유행성동맹에서도 1월 1일이다. ([은하영웅전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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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Chris Marker 

 

Patricio Guzmán: The Battle for Chile (Chris Marker to the Rescue) by ONFB ,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제가 <첫 해(The First Year, 1972)>를 만들었을 때에요. 저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The First Year)는 아옌데 정부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산티아고의 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는데, 그 때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vras) 감독이 스탭들과 함께 <계엄령(State of Siege, 1973)>을 촬영하기 위해서 칠레에 와 있었죠. 크리스 마르께도 그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크리스는 촬영 스탭은 아니었지만, 코스타 가브라스의 친구로서 그의 촬영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크리스 마커가 극장에서 제 영화를 봤던 거에요. 그는 제 주소를 알아낸 다음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문을 두드렸고, 제가 문을 열었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크리스 마커입니다.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그를 알고 있었고, 그를 존경하고 있었기 떄문에 흥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가 말했죠. 저는 당신의 작품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신이 그것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것을 사는 수 밖에요. 그 얘기에 또 놀랐습니다. 저는 그 다큐멘터리를 다른 나라에서 구매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는 떠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네거티브 필름, 사운드트랙과 퍼포레이트된 마그네틱 테이프를 보냈어요. 얼마 후에 그는 프랑스어로 더빙된 버젼을 만들었습니다.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말이죠. 프랑수아 뻬리에(Françoise Perrier), 프랑수아 아르누(Françoise Arnoul), 이브 몽땅(Yves Montand) 등이 참여했었어요. 그 버젼은 프랑스와 벨기에, 스위스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제게는 정말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버젼을 보러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시간이 더 흐르고, 아옌데 정부 말기였습니다. 우리는 촬영을 계속 해야 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작업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어요. 저는 크리스에게 연락했습니다.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며 긴 편지를 썼어요. 칠레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했어요. 시민들의 전투가 임박했고,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가 전보를 보내왔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크리스.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한 달 후, 공항으로 우리에게 짐꾸러미가 하나 도착했어요. 3만 5천 피트의 필름이었습니다. <칠레 전투(The Battle of Chile)>는 그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어요. 당시 칠레에서 필름 수입은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수입 가능한 것은 오직 자동차, 트럭, 기계의 부품 따위 밖에 없었어요. 필름이 필요하다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밀수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그건 우리에게 불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모두 감정이 크게 복받쳐 올랐었죠. 

우리는 우리 사무실에 도착해 그 꾸러미를 열었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새 필름통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것들은 로체스터에서 온, 코닥 필름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유효기간이 지난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었습니다. 망가지고 녹이 슨 필름통 속에 있는 것들로 말이죠. 그 필름통은 새 것이었어요. 그건 마치 장식품 같았어요. 아름다운 물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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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과제 때문에 책을 좀 많이 빌렸다. 마침 짐이 꽤 있어서 가방도 꽉 찬 상태였는데, 사물함에 놓고 갈까하다 집에서도 계속 읽어야될 것 같아 양손으로 책을 껴안고 도서관을 나왔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팟을 랜덤으로 플레이 해 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지하철역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 노래를 골라 들을 수 없는 상황. 다 내가 좋아해서 담아 놓은 곡들이지만, 기분에 따라 듣고 싶지 않은 곡들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랜덤 플레이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고 견뎌내겠다는(?) 일상의 소소한 결연.

출발은 무난했다. 아마츄어증폭기의 “먼데이로봇”. 그리고 움찔- 직격.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오랜만에 듣게 되는 노래. 아직 햇살이 밝은 오후, 눈 앞에는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 가득한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나는 스스로를 “자물쇠로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풍경과는 너무나 온도차가 큰 이 노래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금새 눈물이 핑 돌았는데, 청승떨지 않으려 꾹 참고 묵묵히 인파 속을 통과했다. 
최근에 10년 만에 앨범을 내고 공연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새 노래가 궁금하다.
정태춘, 박은옥 씨를 직접 본 것은  2006년 4월 대추리가 마지막이다.
   

우리들의 죽음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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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듣게 되는 음악. 
Divine Comedy의 [Absent Friends] 앨범, “Our Mutual Friend”.
5년 째 이 노래만 컬러링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다른 곡과는 달리 guitar 사운드도 없이 오직 관현악 연주만 쓰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케스트레이션…
 

가사도 예술.

No matter how I try,
I just can’t get her out of my mind
And when I sleep I visualize her.

I saw her in the pub,
I met her later at the nightclub.
A mutual friend introduced us
We talked about the noise
And how its hard to hear your own voice
Above the beat and the sub-bass.
We talked and talked for hours,
We talked in the back of our friend’s car
As we all went back to his place.

On our friend’s settee,
she told me that she really liked me
And I said: “Cool, the feeling’s mutual.”
We played old 45s
And said it’s like the soundtrack to our lives
And she said: “True, it’s not unusual.”
Then privately we danced
We couldn’t seem to keep our balance
A drunken haze had come upon us.
We sank down to the floor
And we sang a song that I can’t sing anymore
And then we kissed and fell unconscious.

I woke up the next day
All alone but for a headache.
I stumbled out to find the bathroom
But all I found was her
Wrapped around another lover.
No longer then is he our mutual friend.
(이게 사는건가…)
 

디바인 코미디 “덕후” 사이트에 따르면 “나”와 그녀가 함께 부르던 곡은 Sc0tt Walker가 노래하는 “The Sun Ain’t Gonna Shine Anymore”이라고. 스캇 워커는 잘 모르는 어르신인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David Sylvian이 생각나네. 그러고보니 Neil Hannon 음성하고도 비슷하다. 스캇 워커나 닐 해넌이 데이빗 실비앙보다 훨씬 발랄(?)하지만…

[Absent Friends]는 국내 라이센스반으로 가지고 있는데, 최세희씨의 앨범 소개글이 아주 찰지다. 진정 디바인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의 일필휘지. 최세희씨… “loser”님도 Radiohead 보러 지산에 오시겠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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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토요일. 사운드 수업 교수님, 동료 수강생들과 함께 백남준아트센터에 다녀왔다. 아트센터에서는  ”x_sound :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라는 존 케이지 관련 특별전이 진행 중인데 수업에서 존 케이지가 많이 언급되기도 하고, 마침 그 날 존 케이지 작품 연주회도 있으니 바람도 쐴 겸 겸사겸사 같이 가보자는 교수님의 제안이었다. 작은 연주회는 존 케이지 작품의 실연을 처음으로 접했다는 것에 의의를. 전시는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로였다. 그보다도…

원래 집합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오전에 먼저 도착해 전시를 둘러보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1층 화장실에 갔었는데 어느 칸의 문을 열었더니 변기 속에 똥이 막 나온 상태 그대로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문을 닫고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그 이미지가 머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 굵기와 모양으로 보아 많이 먹고 오래 참은 뒤 배설된 것이 확실 해 보였다. 실은 최근에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3월 31일, 토요일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는 “Abstract Walking”이라는 김소라 작가의 개인전, 3층에서는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展이 진행중이었다. 그 날 김소라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있었는데 토크 보다는 “프로메테우스의 불” 안무 사부,  정영두 선생님이 참여한 작업이 궁금해서 들렀던 터였다. 3층 화장실에 갔는데 우측 칸 변기 속에 똥이 있었다. 한 사람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많은 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물을 내리고 몸을 돌렸었다. 아트센터 화장실의 똥이라…  ‘이것도 일종의 퍼포먼스일까?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의 흔적인가?’ 따위의 쓸데없는 감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똥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았던 피에로 만쪼니의 행각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아트센터에서 그만큼 거대한 똥을 다시 만난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변기의 물을 내려주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 왠지 그래야만할 것 같았다.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 하던 중 입고있던 바지가 흘러내렸던 백남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워낙 자극적인 이미지를 접한 터라 자꾸 이런 터무니 없는 정보들이 생각나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백남준아트센터와 왠지 어울리는 몽따주 아닌가… 전국, 아니 전 세계 아트센터들을 돌아다니며 이런 퍼포먼스를 해볼까?’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부끄…러울 건 전혀 없고, 어쨋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스럽게 곱씹어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카페에 앉아있는데, 방금 보았던 그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특이한 것은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그것, 백남준아트선재센터에서의 그것 모두 매우 양이 많았었다는 것이다. 아아, 현대인은 너무 많이 먹는다. 육식은 또 얼마나 자주 하는지. 계층에 관계없이 육식을 하게 된 것이 불과 50년도 되지 않는다. 오직 식용을 목적으로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육류 제품이 기업적으로 생산된다. 엄청난 양이다. 파리의 평온한 일상과 도살장의 도살 장면을 병치했던 조르주 프랑쥐의 <짐승의 피>, 역시 기업형 도축이 언급되는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패스트푸드 네이션>이 생각난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지금의 육류 소비 행태는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템플 그랜딘 여사의 경우 “비학대적 도축시설 설계”라는, 그 공헌은 전제가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자폐증을 극복해낸 것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왠지 그녀 뒤에 도축기업 로비스트들이 숨어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육식을 비롯한 폭식을 조장하는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많이 먹는다는 행위”, 즉 식제품의 대량 소비는 유감스럽게도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런 판단을 하고난 뒤부터 의식적으로 먹는 양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적게 먹다보니 1차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줄어든 배설량이었다. 필요 이상의 영양분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퇴사하고 최근 1년 간, 뭐 이런 경험을 했던지라; 아트센터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똥의 이미지가 유난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과잉 소비를 조장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꼬는 설치미술작품 같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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