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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죽음

기말 과제 때문에 책을 좀 많이 빌렸다. 마침 짐이 꽤 있어서 가방도 꽉 찬 상태였는데, 사물함에 놓고 갈까하다 집에서도 계속 읽어야될 것 같아 양손으로 책을 껴안고 도서관을 나왔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팟을 랜덤으로 플레이 해 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지하철역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 노래를 골라 들을 수 없는 상황. 다 내가 좋아해서 담아 놓은 곡들이지만, 기분에 따라 듣고 싶지 않은 곡들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랜덤 플레이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고 견뎌내겠다는(?) 일상의 소소한 결연.

출발은 무난했다. 아마츄어증폭기의 “먼데이로봇”. 그리고 움찔- 직격.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오랜만에 듣게 되는 노래. 아직 햇살이 밝은 오후, 눈 앞에는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 가득한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나는 스스로를 “자물쇠로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풍경과는 너무나 온도차가 큰 이 노래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금새 눈물이 핑 돌았는데, 청승떨지 않으려 꾹 참고 묵묵히 인파 속을 통과했다. 
최근에 10년 만에 앨범을 내고 공연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새 노래가 궁금하다.
정태춘, 박은옥 씨를 직접 본 것은  2006년 4월 대추리가 마지막이다.
   

우리들의 죽음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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