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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홈페이지…
이렇게 한 번

http://jongkwanpa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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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피플]

“포틀랜드 커뮤니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얀 새’”
[피플] 화이트 버드 공동창립자 폴 킹 인터뷰 

(인터뷰어 백종관)

http://kor.theapro.kr/?sub_num=143&pageNo=1&state=view&idx=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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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국 레지던시 작가와의 아티스트 토크’  
2015.09.18

“이빨, 다리, 깃발, 폭탄”, ”양화”, ”와이상” 상영 + 토크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다..

작품 발표는 2016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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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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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독립영화칼럼

“아시아, 예술, 극장”
백종관, 2015.9.10

http://kmdb.or.kr/column/indi_column_view.asp?tbname=indi_column&seq=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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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영화관 북카페’_ 2012.6.5_ 백종관

 

가장 많은 책들이 언급되는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하니 The Divine Comedy의 “The Booklovers”가 머리 속에서 자동 재생중- ). 책은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서재에 앉아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라면, 주인공 뒤쪽으로 서가에 꽂혀있는 무수한 책들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게 될 것이다. 감독의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아마 카메라의 초점은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을 것이고 책들은 단지 배경으로 처리가 될 텐데 이것을 책이 언급되고 있는 장면으로 보기는 힘들다.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되는 매체이므로 영화에서 구체적인 ‘언급’이란 배우의 대사나 나레이션, 클로즈업 된 이미지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독한 영화 <화씨 451>(Fahrenheit 451, 1966)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책이 언급되는 영화다.  

   래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화씨 451>은 주인공 몬탁(Montag, 배우 Oskar Werner)이 책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정확히 연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미래 사회. 몬탁은 ‘방화서’에서 일하는 ‘방화수’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집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지어져 더 이상 불을 끄는 소방수의 역할이 필요 없는 세상. 방화수는 책을 찾아내어 불태우는 사람이다. 세속적인 정보만이 취급되고 빠른 속도의 문화에 중독된 사람들이 쾌락만을 추구하게 된 사회. 독서는 사람들이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이유로 불법 행위가 되었고 불태워야할 아이템이 되었다. 촉망받는 방화수였던 몬탁은 젊은 이웃 여인 클라리세(Clarisse, 배우 Julie Christie)와의 만남을 통해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방화 업무 도중 몰래 챙겨온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 불법 행위는 아내로 인해 고발당하고, 국가 조직에 의해 추적당하는 몬탁은 그와 같은 반체제 인사들이 숨어 지내는 숲으로 몸을 은신한다. 

   <화씨 451>의 주인공이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는 만큼, 소설과 영화 모두 많은 책들이 언급된다. 스스로가 열렬한 책 수집가였던 트뤼포는 원작에 언급된 책들 보다 더 많은 책들을 영화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몬탁이 암송하는 방화서의 공식 슬로건은 “월요일에는 밀레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인데, 영화에서 몬탁의 대사를 보면 화요일에는 톨스토이, 토요일에는 쇼펜하우어와 사르트르가 슬로건에 추가된다. 영화에서 책을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순간순간 불에 타들어가는 책들이 클로즈업 되는데 이 책들은 모두 트뤼포가 직접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감독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불타는 책들 중에 영화의 원작 소설인 [화씨 451](1953)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동 같은 트뤼포는 이 영화의 ‘기원’을 태워버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불태워 버린다. 본인이 필진으로 있었던 영화잡지 [까이에 뒤 씨네마] 역시 불타고 있는데,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스틸 사진이 커버로 쓰인, 그 불타던 [까이에 뒤 씨네마]의 커버스토리를 쓴 사람이 바로 프랑수아 트뤼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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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960 issue of “Cahiers du Cinéma”, with Jean Seberg in Á bout de souffle on the cover

   원작자 래이 브래드버리는 본인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번역서에는 브래드버리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그는 트뤼포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자평한다. 줄리 크리스티라는 배우가 ‘젊은 이웃 여인’과 몬탁의 아내로 1인 2역을 한 점, 철학자 파버와 로봇 사냥개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빠진 점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브래드버리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특히 파버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는데, 소설에서 작가인 브래드버리를 대신해 빠른 속도에 매몰되어 가는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파버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는 파버와 더불어 방화서 서장 비티가 몬탁에게 하는 말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비티는 몬탁과 적대하고 있는 국가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도 한 때 독서에 탐닉했던 사람으로서 파버와 함께 브래드버리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목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매체의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작가와 감독의 성향에 따라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소설 [화씨 451]의 경우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못한 멋진 장면 묘사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늘 몬탁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로봇 사냥개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야기 초반, 몬탁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들의 묘사와 계속 교차되며 서술되는데 그 긴박감이 대단하다. SF 영화지만 1966년에 만들어진 만큼, 영화 <화씨 451>에 대단한 CG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소설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 또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오프닝 타이틀부터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투자자, 제작자나 영화의 주요 스탭의 이름이 스크린에 텍스트로 나타나는데 <화씨 451>에서는 계속 색깔이 바뀌는 어떤 풍경들만이 화면에 비춰질 뿐이고 대신 글로 쓰여 졌을 내용을 나레이터가 직접 읽어 준다. 이것은 문자 매체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영화의 내용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현한 것이다. 주인공 몬탁이 집에 돌아와 무언가 커다란 종이를 펼쳐보는 장면이 있는데, 누가 봐도 보통의 신문 크기이지만 종이에 글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그림들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브래드버리가 묘사한 미래 사회 모습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멋진 장치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 감시 지배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책을 암송하며 눈 내리는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은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선사해 준다. (트뤼포의 회고에 따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사전 계획대로 촬영되었는데 눈이 내리는 마지막 장면만이 즉흥적으로 촬영된 부분이라고.)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 제작자 라울 레비로부터 [화씨 451]을 처음으로 소개 받은 것은 1960년이었다. 그는 소설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화씨 451>은 트뤼포가 영어로 찍은 첫 영화였고, 첫 SF 영화였으며 게다가 첫 컬러 영화였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과정은 트뤼포 평전,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트뤼포는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벨바그를 이끈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으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치열하게 구축한 작가로, “영화사상 가장 영화를 사랑한 감독”(?)이라 불린다. 영화중독자 트뤼포의 파란만장한 삶이 궁금하신 분들은  [화씨 451]과 더불어 그의 평전을 꼭 한 번 접해보시와요…  20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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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야 라스잠리안숙Araya Rasdjarmrearnsook 인터뷰
http://webwhale.asianartstheatre.kr/blog/araya-rasdjarmrearnsook-interview/

(아시아예술극장 웹진 ‘웹고래’, 인터뷰 섹션) 

2014년 10월 말, 광주에서 진행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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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상 (i – image), 14min. 2015

세컨드임팩트‘와 수능을 1년 앞둔 1999년,
‘와이상’으로부터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이제 ‘써드임팩트’를 앞둔 2015년, ‘와이상’에게 보내는 뒤늦은 답장. 
 

synop
안토니오 그람시의 서신집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펼쳐 보니, 오래전 와이상에게 받았던 에반게리온 그림엽서가 꽂혀있다. 그람시가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의 텅 빈 프레임들에 주목했던 것처럼, 나는 와이상이 촬영한 영상들을 계속 돌려본다.

_revolving image revolution(s)
__ 무엇을 이미지라고 부를까_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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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것은 그러나 시인이 짓는다>
(Was bleibet aber, stiften die Dichter)

  –  two channel projection (8min, 6min) / 2014
  – “즐거운 나의 집”, 아르코미술관 협력기획전 (’14.12.12-’15.02.15)
      http://www.arkoartcenter.or.kr/nr3/?c=2/12  

: 시대에 따라 집의 의미도 바뀐다. 본래 집의 의미는 점점 축소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라는 ‘상품’은 재테크의 수단이자 계급장으로 기능한다. 매스 미디어에서 이 상품을 진열하는 이미지들은 매우 서늘하다… 그곳은 단란한 가족들의 웃음보다 고독과 권태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상에는 아래 책들에서 빌어온 문장을 담았습니다.

[떠도는 그림자들],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역, 문학과 지성사
[사람, 건축, 도시], 정기용, 현실문화
[신곡],  단테 알리기에기, 한형곤 역, 서해문집
[아파트 게임], 박해천, 휴머니스트
[피곤한 노동], 체사레 파베세, 김운찬 역, 청담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전남일, 돌베개 

thanks to
글린트와 SOA 식구들, 고은미, 안강현, 정지영,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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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분량이 2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것을 확인하고, 하루 밤을 새면 다 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렸다. [바람이 분다, 가라]도, [희랍어 시간]도 이렇게까지 오래 붙잡고 있진 않았다. [소년이 온다]는 페이지 한 장 넘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소설의 제목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소년은 ‘어떻게’ 오는가.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어딘가에 버려져, 몸에는 “빈 데 없이 흰 구더기가 들끓”은 채로, 다른 시체들과 함께 태워져 재가 되고, 그런데 “여전히 눈에서 피가 흐르는 채, 서서히 조여오는 거대한 얼음 같은 새벽빛 속에서” 어디로 움직여야 할 줄 모르다가… 그러다 ‘다시’ 오는 것이다, 소년은.

   꼭 이렇게 써야만 했을까? 꼭 이렇게 써야 했을 것이다. 5.18에 대한 자료들, 5.18을 다룬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다시 돌아보며, 실제 그 사건을 겪었던 광주 시민들과 대화를 나눈 후 작가 한강이 내렸을 판단에 대해… 그러니 그래야만 했을 것이라고, 책을 덮고 난 지금, 내가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아니 한 문장 한 문장을 겨우 읽어내려가다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 글을 쓰던 순간 작가 자신은 얼마나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써낸 것이다. 마침내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저녁이면 계엄군과 대치한 외곽 지역에서 총을 맞은 사람들이 실려왔다. 군의 총격에 즉사하거나 응급실로 운반되던 중 숨이 끊어진 이들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형상이 너무 생생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반투명한 창자들을 뱃속에 집어넣다말고 은숙 누나는 강당 밖으로 뛰어나가 토하곤 했다.”

   ”은숙 누나”와 “동호”가 시신들을 수습했던 바로 그 공간의 지척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예전 전남도청 자리에 현재 공사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내 일터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바로 그 장소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무엇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각 선택지의 기원을 따져보는 일. 이 ‘싸움’은 광주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80년 광주는 지금 밀양에 있고, 강정에 있다. 자주 대한문 앞에서, 오늘도 광화문 근처에서 우리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는 그런 싸움. Transforming. 적의 변화무쌍함. 만연한 각종 악성 바이러스들 속에서 그만한 변형의 문법을 사용해 또 거기에 맞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노동. 항상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빌면서, 고민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매일 출퇴근하며 그 길 위를 걷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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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도시에서(En la ciudad de Sylvia, 2007)>를 각별히 아끼는 이유 중 일부를 영화잡지 ‘아노.(anno.)’에 적었다(아아… 아노에 실린 글을 보면 몇 개의 각주 중, 내가 삽입하지 않은 각주가 ‘편집자 주’라는 별도의 표기없이 실려있다. 사전에 얘기들은 바도 없다. 슬프다.)
   사운드가 매우 특별한 이 영화에서, Migala의 곡이 두 번 등장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 자동차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이민자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 카라디오에서 미갈라의 “Style”이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오래전 매우 즐겨들었던 미갈라의 노래가 의외의 장면에서 들려와 영화를 보다 깜짝 놀랐었다. 호세 루이스 게린과 미갈라의 음악, 생각해보면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양쪽 모두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몽타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이니.

미갈라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생각나는 노래가 따로 있다.
모든 일에 전투적이었던 우리들이 함께 즐겨 듣던 노래…
‘이 노래 가사, 꼭 무슨 영화 같지 않아?’ 
사운드트랙엔 닉 드레이크와 스미스-  

I wanted someone to enter my life
like a bird that comes into a kitchen
And starts breaking things
and crashes with doors and windows
Leaving chaos and destruction

This is why I accepted her kisses
as someone who has been given
a leaflet at the subway
I knew, don’t ask me why or how
that we were gonna share
even our toothpaste

We got to know each other
by caressing each other’s scars
Avoiding getting too close
to know too much

We wanted happiness to be like a virus
that reaches every place in a sick body
I turned my home into a water bed
and her breasts into dark sand castles

She gave me her metaphors,
her bottles of gins
and her North Africa stamp collection
At night we would talk in dreams
back to back and we would
always, always, agree

The sheets were so much like our skin
that we stopped going to work
Love became a strong big man with us,
terribly handy, a proper liar
with big eyes and red lips

She made me feel brand new
I watch her get fucked up, lose touch
We listened to Nick Drake
in her tape recorder
And she told me she was a writer
I read her book in two and a half hours
And cried all the way through
as watching Bambi

She told me that when I think
she has loved me all she could,
she was gonna love me a little bit more
My ego and her cynicism
got on really well and we would say
“What would you do in case I die” or
“What if I had AIDS?” or
“Don’t you like the Smiths” or
“Let’s shag now”

We left our fingerprints
all around  my room
Breakfast was automatically made
And it would come to bed in a trolley,
no hands

We did compete to see
who would have the best orgasms,
the nicer visions,
the biggest hangovers
And if she came pregnant we decided
it would be God hand’s fault

The world was our oyster
Life was life

But then she had to go back to London
to see her boyfriend and her family
and her best friends
and her pet called Gus

And without her I’ve been a mess
I’ve painted my nails black
and got my hair cut
I open my pictures collection
and our past can be limitless
And I know the process is
to slice each section of my story
thinner and thinner
until I’m left only with her

I’ve felt like shite all the time
no matter who I kiss or how charming
I try to be with my new birds
This is the point, isn’t it?
New birds will never project me
along a wire from the underground
into the air, into the world

 

부엌에 들어온 한 마리 새처럼
내 인생에 누군가 들어와 주길 원했다
그리고 물건을 부수고
문과 창문에 부딪히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랬다

마치 지하철역에서 광고 전단을
받아 들 듯이 그녀의 키스를
받아 들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안다,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
그녀와 치약까지 같이 쓰는
사이가 되었는지 묻지 마라

우린 서로의 흉터를 쓰다듬으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됐지만
너무 많이 알게 되어
관계가 깊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우리는 바이러스처럼 아픈 몸 속
구석구석에 퍼지는 행복을 원했다
깊은 모래성이 된 그녀의 가슴에 파묻혀
나는 물침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내게 진을 따라 주었고
수집 해놓은 북아프리카 우표도 보여줬다
밤이 되면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맞대고
꿈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언제나, 언제나 마음이 잘 맞았다

침대 시트는 우리의 살결 같았고
우리는 직장에 그만 나가게 됐다
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다
사랑이란 커다란 눈과 빨간 입술을 가진
간편하고 그럴싸한 핑계거리였다

그녀로 인해 새로 태어난 나는
망가지고 지친 그녀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테입에 든
Nick Drake 노래를 들었다
그녀는 작가였다고 했다
그녀가 쓴 책을 두 시간 반만에
다 읽는 도중 마치 만화영화 밤비를 보듯
줄곧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더할 나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녀는 날 조금 더 사랑해 주겠다고 했다
나의 자아와 그녀의 냉소는 너무도
잘 어울려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내가 에이즈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Smiths 노래 안 좋아해?”
“지금 할까?”

내 방 안에는 온통
우리 손자국 천지였다
아침 식사는 저절로 만들어졌고
손 댈 필요도 없이 손수레에 실려
침대까지 가져와졌다

우리는 누구의 오르가즘이 더 멋진지
누구의 꿈이 더 근사한지
누구의 숙취가 더 심한지
서로 견주어 보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임신하면
하느님의 실수로 돌렸을 것이다

우리가 못 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삶은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때 그녀는
남자 친구와 가족,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Gus라는 애완 동물을 보러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가 떠나고 난 엉망이 됐다
손톱을 검게 칠하고
머리를 잘랐다
사진첩을 꺼내 보니
우리의 추억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인생 스토리는
얇아지고 얇아져서 결국
그녀와의 추억만 남게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다른 여자와 아무리 키스를 해도
다른 ‘새’에게 아무리 멋지게 보이려 해도
내 기분은 항상 쳐져 있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다른 새가 들어와도 
지하에서 나를 꺼내 저 창공으로, 세상으로
절대로  이끌어 주지 못할 것이다

(가사해석 by popnlyr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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