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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자기야 (D[ear] D[ollie]),

난 지금 헬름홀츠(Helmholtz)의 책을 덮고 이제 헤르츠(Hertz)의 전기력 전파 부분을 다시 세심히 보고 있는 중이야. 전기동역학에서의 최소작용원리를 다룬 헬름홀츠의 논문이 잘 이해가 안됐거든. 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이 오늘날 얘기되는 방식으로는 실재에 부합할 수 없다는 확신이 점점 들고 있어. 또 그것이 보다 간단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에테르”라는 용어가 전기 이론에 도입되면서, 그 운동이 기술될 수 있는 매질 개념도 따라오게 됐잖아. 그런데 내 생각엔, 그 매질에 물리적 의미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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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라니 ㅋㅋ
지난 학기에 읽었던 번역서 내용 중에 최고의 번역 임팩트.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프리즘 : 역사로 과학 읽기]라는 책에 과학사학자 Peter Galison의 논문, ‘아인슈타인의 시계들 : 시간의 장소(Einstein’s Clocks: The Place of Time, 번역 : 정동욱)’가 실려있다. 이 글 안에 아인슈타인이 1899년 8월의 어느날, 애인 밀레바 마리치에게 보넀던 편지의 일부가 실려 있는데 위에 옮겨적은 것이 바로 그 편지 내용이다. “D[ear] D[ollie]“라는 내용을 “자기야”라고 번역한 건 너무 오바한 게 아닌가 싶어 궁금한 마음에 피터 갤리슨이 편지 내용을 발췌해 온 영문 번역판을 찾아봤다. 그가 인용한 내용은 편지의 중간 부분인데, “난 지금 헬름홀츠…” 바로 앞 문장이 다음과 같다. 

“You are such a robust girl and have so much vitality in your little body.”

아하.

대형 시계탑들로 둘러싸인 베른의 도심 환경, 특허국에서 “시간 조율 시스템” 관련 특허들을 처리했던 업무 경험이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분석하는 피터 갤리슨. 20세기 초반, 대도시에서는 시계탑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산업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간의 통합이 반드시 필요했던 시대. 지역마다, 사람들마다 다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하나로 조율하기 위해서는 시계탑의 역할이 중요했다. ‘아인슈타인의 시계들’을 읽을 무렵 마침 영화 <Hugo>의 원작 동화 [위고 카브레]를 같이 읽고 있었다. 위고가 맡고 있던 일은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탑들의 시간을 하나로 조율하는 것. [위고 카브레]는 텍스트와 그림, 영화 스틸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스틸이 영화<Safety Last>에서 Harold Lloyd가 대형 시계탑 시계 바늘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다. 갑자기 이 사진을 마주쳤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고, 이내 너무 서글퍼졌다. 근대적 시간의 탄생과 이제 시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safety last 

그리고 은하영웅전설-

제국령이든 동맹령이든, 자전하는 행성은 밤낮의 교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천체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주기를 가진 것이 없어, 어떤 행성의 자전주기는 18시간 반, 다른 행성은 40시간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주장한다…난감한 것은 오히려 21시간 반이나 27시간처럼 지구에 가까운 자전 주기를 지닌 행성이다. 이런 경우 시행착오 끝에 자전주기를 24등분해 행성지방시를 사용하는 경우와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고 표준 24시간제를 사용하는 경우로 나뉘었다. 어느  쪽이건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24시간이 하루, 365일이 1년. 흔히 말하는 이 ‘표준력’은 제국에서도 동맹에서도 쓰인다. 은하제국의 1월 1일은 자유행성동맹에서도 1월 1일이다. ([은하영웅전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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