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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영화관 북카페’_ 2012.6.5_ 백종관

 

가장 많은 책들이 언급되는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하니 The Divine Comedy의 “The Booklovers”가 머리 속에서 자동 재생중- ). 책은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서재에 앉아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라면, 주인공 뒤쪽으로 서가에 꽂혀있는 무수한 책들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게 될 것이다. 감독의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아마 카메라의 초점은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을 것이고 책들은 단지 배경으로 처리가 될 텐데 이것을 책이 언급되고 있는 장면으로 보기는 힘들다.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되는 매체이므로 영화에서 구체적인 ‘언급’이란 배우의 대사나 나레이션, 클로즈업 된 이미지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독한 영화 <화씨 451>(Fahrenheit 451, 1966)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책이 언급되는 영화다.  

   래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화씨 451>은 주인공 몬탁(Montag, 배우 Oskar Werner)이 책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정확히 연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미래 사회. 몬탁은 ‘방화서’에서 일하는 ‘방화수’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집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지어져 더 이상 불을 끄는 소방수의 역할이 필요 없는 세상. 방화수는 책을 찾아내어 불태우는 사람이다. 세속적인 정보만이 취급되고 빠른 속도의 문화에 중독된 사람들이 쾌락만을 추구하게 된 사회. 독서는 사람들이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이유로 불법 행위가 되었고 불태워야할 아이템이 되었다. 촉망받는 방화수였던 몬탁은 젊은 이웃 여인 클라리세(Clarisse, 배우 Julie Christie)와의 만남을 통해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방화 업무 도중 몰래 챙겨온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 불법 행위는 아내로 인해 고발당하고, 국가 조직에 의해 추적당하는 몬탁은 그와 같은 반체제 인사들이 숨어 지내는 숲으로 몸을 은신한다. 

   <화씨 451>의 주인공이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는 만큼, 소설과 영화 모두 많은 책들이 언급된다. 스스로가 열렬한 책 수집가였던 트뤼포는 원작에 언급된 책들 보다 더 많은 책들을 영화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몬탁이 암송하는 방화서의 공식 슬로건은 “월요일에는 밀레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인데, 영화에서 몬탁의 대사를 보면 화요일에는 톨스토이, 토요일에는 쇼펜하우어와 사르트르가 슬로건에 추가된다. 영화에서 책을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순간순간 불에 타들어가는 책들이 클로즈업 되는데 이 책들은 모두 트뤼포가 직접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감독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불타는 책들 중에 영화의 원작 소설인 [화씨 451](1953)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동 같은 트뤼포는 이 영화의 ‘기원’을 태워버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불태워 버린다. 본인이 필진으로 있었던 영화잡지 [까이에 뒤 씨네마] 역시 불타고 있는데,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스틸 사진이 커버로 쓰인, 그 불타던 [까이에 뒤 씨네마]의 커버스토리를 쓴 사람이 바로 프랑수아 트뤼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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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960 issue of “Cahiers du Cinéma”, with Jean Seberg in Á bout de souffle on the cover

   원작자 래이 브래드버리는 본인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번역서에는 브래드버리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그는 트뤼포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자평한다. 줄리 크리스티라는 배우가 ‘젊은 이웃 여인’과 몬탁의 아내로 1인 2역을 한 점, 철학자 파버와 로봇 사냥개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빠진 점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브래드버리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특히 파버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는데, 소설에서 작가인 브래드버리를 대신해 빠른 속도에 매몰되어 가는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파버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는 파버와 더불어 방화서 서장 비티가 몬탁에게 하는 말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비티는 몬탁과 적대하고 있는 국가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도 한 때 독서에 탐닉했던 사람으로서 파버와 함께 브래드버리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목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매체의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작가와 감독의 성향에 따라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소설 [화씨 451]의 경우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못한 멋진 장면 묘사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늘 몬탁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로봇 사냥개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야기 초반, 몬탁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들의 묘사와 계속 교차되며 서술되는데 그 긴박감이 대단하다. SF 영화지만 1966년에 만들어진 만큼, 영화 <화씨 451>에 대단한 CG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소설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 또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오프닝 타이틀부터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투자자, 제작자나 영화의 주요 스탭의 이름이 스크린에 텍스트로 나타나는데 <화씨 451>에서는 계속 색깔이 바뀌는 어떤 풍경들만이 화면에 비춰질 뿐이고 대신 글로 쓰여 졌을 내용을 나레이터가 직접 읽어 준다. 이것은 문자 매체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영화의 내용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현한 것이다. 주인공 몬탁이 집에 돌아와 무언가 커다란 종이를 펼쳐보는 장면이 있는데, 누가 봐도 보통의 신문 크기이지만 종이에 글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그림들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브래드버리가 묘사한 미래 사회 모습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멋진 장치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 감시 지배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책을 암송하며 눈 내리는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은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선사해 준다. (트뤼포의 회고에 따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사전 계획대로 촬영되었는데 눈이 내리는 마지막 장면만이 즉흥적으로 촬영된 부분이라고.)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 제작자 라울 레비로부터 [화씨 451]을 처음으로 소개 받은 것은 1960년이었다. 그는 소설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화씨 451>은 트뤼포가 영어로 찍은 첫 영화였고, 첫 SF 영화였으며 게다가 첫 컬러 영화였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과정은 트뤼포 평전,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트뤼포는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벨바그를 이끈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으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치열하게 구축한 작가로, “영화사상 가장 영화를 사랑한 감독”(?)이라 불린다. 영화중독자 트뤼포의 파란만장한 삶이 궁금하신 분들은  [화씨 451]과 더불어 그의 평전을 꼭 한 번 접해보시와요…  20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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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분량이 2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것을 확인하고, 하루 밤을 새면 다 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렸다. [바람이 분다, 가라]도, [희랍어 시간]도 이렇게까지 오래 붙잡고 있진 않았다. [소년이 온다]는 페이지 한 장 넘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소설의 제목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소년은 ‘어떻게’ 오는가.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어딘가에 버려져, 몸에는 “빈 데 없이 흰 구더기가 들끓”은 채로, 다른 시체들과 함께 태워져 재가 되고, 그런데 “여전히 눈에서 피가 흐르는 채, 서서히 조여오는 거대한 얼음 같은 새벽빛 속에서” 어디로 움직여야 할 줄 모르다가… 그러다 ‘다시’ 오는 것이다, 소년은.

   꼭 이렇게 써야만 했을까? 꼭 이렇게 써야 했을 것이다. 5.18에 대한 자료들, 5.18을 다룬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다시 돌아보며, 실제 그 사건을 겪었던 광주 시민들과 대화를 나눈 후 작가 한강이 내렸을 판단에 대해… 그러니 그래야만 했을 것이라고, 책을 덮고 난 지금, 내가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아니 한 문장 한 문장을 겨우 읽어내려가다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 글을 쓰던 순간 작가 자신은 얼마나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써낸 것이다. 마침내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저녁이면 계엄군과 대치한 외곽 지역에서 총을 맞은 사람들이 실려왔다. 군의 총격에 즉사하거나 응급실로 운반되던 중 숨이 끊어진 이들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형상이 너무 생생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반투명한 창자들을 뱃속에 집어넣다말고 은숙 누나는 강당 밖으로 뛰어나가 토하곤 했다.”

   ”은숙 누나”와 “동호”가 시신들을 수습했던 바로 그 공간의 지척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예전 전남도청 자리에 현재 공사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내 일터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바로 그 장소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무엇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각 선택지의 기원을 따져보는 일. 이 ‘싸움’은 광주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80년 광주는 지금 밀양에 있고, 강정에 있다. 자주 대한문 앞에서, 오늘도 광화문 근처에서 우리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는 그런 싸움. Transforming. 적의 변화무쌍함. 만연한 각종 악성 바이러스들 속에서 그만한 변형의 문법을 사용해 또 거기에 맞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노동. 항상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빌면서, 고민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매일 출퇴근하며 그 길 위를 걷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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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도시에서(En la ciudad de Sylvia, 2007)>를 각별히 아끼는 이유 중 일부를 영화잡지 ‘아노.(anno.)’에 적었다(아아… 아노에 실린 글을 보면 몇 개의 각주 중, 내가 삽입하지 않은 각주가 ‘편집자 주’라는 별도의 표기없이 실려있다. 사전에 얘기들은 바도 없다. 슬프다.)
   사운드가 매우 특별한 이 영화에서, Migala의 곡이 두 번 등장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 자동차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이민자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 카라디오에서 미갈라의 “Style”이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오래전 매우 즐겨들었던 미갈라의 노래가 의외의 장면에서 들려와 영화를 보다 깜짝 놀랐었다. 호세 루이스 게린과 미갈라의 음악, 생각해보면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양쪽 모두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몽타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이니.

미갈라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생각나는 노래가 따로 있다.
모든 일에 전투적이었던 우리들이 함께 즐겨 듣던 노래…
‘이 노래 가사, 꼭 무슨 영화 같지 않아?’ 
사운드트랙엔 닉 드레이크와 스미스-  

I wanted someone to enter my life
like a bird that comes into a kitchen
And starts breaking things
and crashes with doors and windows
Leaving chaos and destruction

This is why I accepted her kisses
as someone who has been given
a leaflet at the subway
I knew, don’t ask me why or how
that we were gonna share
even our toothpaste

We got to know each other
by caressing each other’s scars
Avoiding getting too close
to know too much

We wanted happiness to be like a virus
that reaches every place in a sick body
I turned my home into a water bed
and her breasts into dark sand castles

She gave me her metaphors,
her bottles of gins
and her North Africa stamp collection
At night we would talk in dreams
back to back and we would
always, always, agree

The sheets were so much like our skin
that we stopped going to work
Love became a strong big man with us,
terribly handy, a proper liar
with big eyes and red lips

She made me feel brand new
I watch her get fucked up, lose touch
We listened to Nick Drake
in her tape recorder
And she told me she was a writer
I read her book in two and a half hours
And cried all the way through
as watching Bambi

She told me that when I think
she has loved me all she could,
she was gonna love me a little bit more
My ego and her cynicism
got on really well and we would say
“What would you do in case I die” or
“What if I had AIDS?” or
“Don’t you like the Smiths” or
“Let’s shag now”

We left our fingerprints
all around  my room
Breakfast was automatically made
And it would come to bed in a trolley,
no hands

We did compete to see
who would have the best orgasms,
the nicer visions,
the biggest hangovers
And if she came pregnant we decided
it would be God hand’s fault

The world was our oyster
Life was life

But then she had to go back to London
to see her boyfriend and her family
and her best friends
and her pet called Gus

And without her I’ve been a mess
I’ve painted my nails black
and got my hair cut
I open my pictures collection
and our past can be limitless
And I know the process is
to slice each section of my story
thinner and thinner
until I’m left only with her

I’ve felt like shite all the time
no matter who I kiss or how charming
I try to be with my new birds
This is the point, isn’t it?
New birds will never project me
along a wire from the underground
into the air, into the world

 

부엌에 들어온 한 마리 새처럼
내 인생에 누군가 들어와 주길 원했다
그리고 물건을 부수고
문과 창문에 부딪히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랬다

마치 지하철역에서 광고 전단을
받아 들 듯이 그녀의 키스를
받아 들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안다,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
그녀와 치약까지 같이 쓰는
사이가 되었는지 묻지 마라

우린 서로의 흉터를 쓰다듬으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됐지만
너무 많이 알게 되어
관계가 깊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우리는 바이러스처럼 아픈 몸 속
구석구석에 퍼지는 행복을 원했다
깊은 모래성이 된 그녀의 가슴에 파묻혀
나는 물침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내게 진을 따라 주었고
수집 해놓은 북아프리카 우표도 보여줬다
밤이 되면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맞대고
꿈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언제나, 언제나 마음이 잘 맞았다

침대 시트는 우리의 살결 같았고
우리는 직장에 그만 나가게 됐다
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다
사랑이란 커다란 눈과 빨간 입술을 가진
간편하고 그럴싸한 핑계거리였다

그녀로 인해 새로 태어난 나는
망가지고 지친 그녀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테입에 든
Nick Drake 노래를 들었다
그녀는 작가였다고 했다
그녀가 쓴 책을 두 시간 반만에
다 읽는 도중 마치 만화영화 밤비를 보듯
줄곧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더할 나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녀는 날 조금 더 사랑해 주겠다고 했다
나의 자아와 그녀의 냉소는 너무도
잘 어울려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내가 에이즈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Smiths 노래 안 좋아해?”
“지금 할까?”

내 방 안에는 온통
우리 손자국 천지였다
아침 식사는 저절로 만들어졌고
손 댈 필요도 없이 손수레에 실려
침대까지 가져와졌다

우리는 누구의 오르가즘이 더 멋진지
누구의 꿈이 더 근사한지
누구의 숙취가 더 심한지
서로 견주어 보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임신하면
하느님의 실수로 돌렸을 것이다

우리가 못 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삶은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때 그녀는
남자 친구와 가족,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Gus라는 애완 동물을 보러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가 떠나고 난 엉망이 됐다
손톱을 검게 칠하고
머리를 잘랐다
사진첩을 꺼내 보니
우리의 추억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인생 스토리는
얇아지고 얇아져서 결국
그녀와의 추억만 남게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다른 여자와 아무리 키스를 해도
다른 ‘새’에게 아무리 멋지게 보이려 해도
내 기분은 항상 쳐져 있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다른 새가 들어와도 
지하에서 나를 꺼내 저 창공으로, 세상으로
절대로  이끌어 주지 못할 것이다

(가사해석 by popnlyr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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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일년 전,
2013년 3월 21일 오후.
서현석 교수님의 [영상미학] 수업 쉬는 시간. 

카메라 옵스쿠라를 가지고 놀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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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8. 
(의뢰를 받고 모 웹진에 기고했던 글. 글이 실렸던 섹션은 사라짐_)
 

누군가 자신이 스무 살 때 보고 감동받았던 연극을 아흔 살의 나이에 영화로 만든다면 그 영화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알랭 레네(Alain Resnais)는 아흔 살의 나이에 또 한 편의 장편영화를 선보였는데, 이 영화는 그가 스무 살 무렵 인상 깊게 감상했던 장 아누이의 연극 <에우리뒤케(Eurydice)>를 영화화한 것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Vous n’avez encore rien vu, You Ain’t Seen Nothin’ Yet)>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영화는 지난 11월 22일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상영 중이다.

   알랭 레네 감독은 <밤과 안개(Nuit et brouillard, 1955)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 1959)><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L’annee derniere a Marienbad, 1961) 등의 작품으로 이미 오래 전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감독으로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부지런한 거장이다. 레네는 늘 그 독특한 영화 형식으로 주목을 받아 왔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역시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레네는 장 아누이(Jean Anouilh)의 《에우리뒤케(Eurydice)》를 메인 테마로 하고 여기에 역시 장 아누이의 작품인 <사랑하는 앙투완(Cher Antoine, ou L’amour rate)>을 결합해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완성했다. 영화는 앙투완이라는 연극 연출가의 사망 소식을 전달받는 배우들의 모습이 연이어 보여지며 시작된다. 배우들은 전화 연락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는데, 각각이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댄 얼굴의 뒷모습 클로즈업만이 보일 뿐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두세 명의 배우가 전화를 받는 장면에 이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겠지만, 알랭 레네는 고집스럽게 13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전화 통화를 모두 보여준다.

   이 배우들은 모두 앙투완의 성으로 초대 받아 앙투완이 남긴 영상물을 보게 되는데 여기에는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에우리뒤케> 리허설 장면이 담겨 있다. 영상을 보고 있는 13명의 노배우들은 젊은 시절에 모두, 앙투완이 연출했던 연극 <에우리뒤케>에 출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리허설 영상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이따금 훈수를 두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하다가, 이윽고 실제 배우처럼 대사를 연기하고 어느 순간 영상 속의 연극과 영상을 바라보던 배우들의 연기가 뒤섞여 시공간을 초월한 <에우리뒤케>가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는 앙투완의 아지트에 있는 스크린이 하나의 액자로 기능하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액자의 경계는 사라지고 아지트는 무대가 되며 여러 층위의 연기 상황들이 포개어져 몽환적인 느낌을 전달해 준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알면 알수록 더 흥미로운 영화다. 알랭 레네가 처음으로 <에우리뒤케>를 관람했던 1940년대로부터 무려 70여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영화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두 작품 사이의 그 긴 시간의 차이가 놀랍게 다가온다. 그런데 <에우리뒤케>가 장 아누이의 완벽한 창작물이 아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의 신화를 바탕으로 다시 쓰여진 희곡이라는 것을 따져보면 70년의 시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다. 오비디우스(Ovidius)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의 사연 역시 담겨있는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를 완성한 것이 2000년 전이다. 그리고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가 변신이야기에 기반해 역작 《그리스 로마 신화(The Age of Fable; or Stories of Gods and Heroes)》를 출간한 것이 1855년이니, 여기에 비하면 70년의 시간은 애교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근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오래된 신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것은 이 영화의 컨셉 자체가 이미 나이들어 늙은 배우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연기했던 인물, 자신들의 나이보다 훨씬 젊은 캐릭터를 그 늙은 현재의 모습으로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빈느 아제마(Sabine Azema)와 피에르 아르디티(Pierre Arditi), 안느 콘시니(Anne Consigny)와 랑베르 윌슨(Lambert Wilson)이 각각 에우리뒤케와 오르페우스 역을 연기하는 모습,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청춘’의 캐릭터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배우들이 열연하는 장면은 예술에서의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젊음과 늙음, 수천 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차는 매체의 형식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용면에서도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되짚어 볼 때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모티브를 빌려온 장 아누이의 <에우리뒤케>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의 신화에, 이상을 쫓는 젊은이들과 세속적인 현실에 안주하는 기성세대 간의 갈등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우리들의 사랑은 너희 같지 않았다며 혀를 차는 에우리뒤케의 부모, 사랑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르페우스의 아버지 캐릭터는 <에우리뒤케> 뿐만 아니라 다른 장 아누이의 작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한국에는 장 아누이의 작품 《안티고네(Antigone)》가 번역되어 있는데,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역시 《에우리뒤케》와 비슷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신화 속의 폭군 크레온은 장 아누이의 작품 속에서 나름 성실한 군주로 재탄생하는데, 그는 현실과 타협하여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어른”으로서 등장하고 그렇기에, 순수함, 자유,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안티고네와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장 아누이의 작품 세계를 따져보면 레네의 시도가 얼마나 유쾌하고 전복적인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누이는 신화를 모티브로 해서 세대 간의 갈등 양상을 비추고 있는데, 레네는 아예 젊은 세대를 늙은 배우들에게 연기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젊은 연기자들의 공연 모습과 노배우들의 연기를 뒤섞어 버림으로써 갈등의 원인이 되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증발시켜 버린다.

   시간이 무화되어 버린 자리에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 신화의 본래 이야기만이 남는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미소년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뒤케가 뱀에 물려 죽자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죽음과 저승의 신 플루톤과 협상을 한다. 오르페우스의 애절함에 플루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만약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뒤케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를 돌아 에우리뒤케를 바라보지만 않는다면 에우리뒤케에게 다시 생명을 돌려주겠다고.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걱정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뒤케는 결국 저승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이 신화 속 연인들의 간절한 사랑은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젊은 배우들의 <에우리뒤케> 연극 리허설이 끝난 후에도 의외의 공간에서 언뜻 모습을 비춘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의 신화에서 에우리뒤케는 두 번의 죽음을 맞는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서는 마치 앙투완이 에우리뒤케의 운명을 재연하는 듯싶다. 첫 번째 죽음에는 13명의 배우들이 저승으로 내려가고, 두 번째 죽음에는 한 명의 오르페우스가 그를 향해 찾아간다. 그는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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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관객은 두 개의 프레임을 마주한다.
스크린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하나와,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의 액자들.
두 프레임은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진동이 반복될수록 그림과 현실이 서로에게 스며든다.

극장을 나오니 거리 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멀리 하늘의 구름, 가로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카루스는 어디에 떨어진 것인가)
그 그림 속에 내가 들어있다.
내가 던지는 시선의 프레임들이
금새 미술관 벽면 한 켠을 가득 채운다.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내가 걸어가는 이 거리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인데
기억 속에서 아른거릴뿐
생각이 나지를 않네

어느 화가의 그 그림이 떠올라
내 가슴은 이상히 떨려오네
갈색 하늘과 쓸쓸한 거리에
외로이 서있는사람

아무도 모르게 하나의 얘기를 만드네
내가 그림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걸으며 하나의 추억을 만드네
내가 그림 속에 그려 있는 것처럼

 

난 이승철이 부른 곡보다
작곡자인 박광현이 직접 부른 버젼이 더 좋다.

‘풍경화 속의 거리’ 

“Museum Hours”
_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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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늘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기차를 타고 순천에 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광주에서 완행의 무궁화호를 타고 화순과 벌교를 지나 순천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열차에서 내려 역 앞 광장으로 나와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곳은 역전시장 쪽이었다. 가만히 그 쪽을 향해 서서 낮은 건물들의 간판 하나하나를 살펴본다. 이제 거기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한참을 바라보다, 또 일부러 마중나오시겠다는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해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짧은 여행의 기록]을 읽은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하야리아에 배치를 받고, 몇 달 뒤 어리버리한 신병 딱지를 떼고나서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가 부산초읍시민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만든 일이었다. 기형도라는 시인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스물 두 살까지 그의 글을 일부러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에세이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책 몇 권을 뒤적이다가, 유난히 커버 디자인이 촌스러운 한 에세이집을 집어 들었다. 기형도의 사진이 표지에 박혀 있는 그 책을 빌려 부대로 돌아왔다. 

 

   그의 “짧은 여행”. 그 여정에서 아무래도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순천에 대한 것이었다. 

   무진(霧津)으로…  광주의 태양은 샛노란 빛이었다. 송수권(宋秀權)씨에 연락을 넣을까 하다가 생각을 거두고 광주역으로 갔다. 문득 순천이 눈에 들어왔고 김승옥(金承鈺)과 김현 생각이 났다… 순천은 나에게 무엇인가. 안개와 병든 지성의 도시, 부패하고 끈끈한 항구, 그리로 가기 위해 나는 광주를 떠난다.

   도시 가득 소금기 섞인 해풍이 군림하고 있다. 예상보다 규모가 크고 번화한 도시였으나 네온사인을 켠 건물들이 없었다. 검고 낮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삐죽삐죽 솟은 가운데 무슨 여관의 간판들만 허공 간간히 빛을 발하고 있어 그로데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벌써 손끝에 끈끈한 자국이 있다… 나는 역 부근 식당에서 백반을 시켜 먹으며, 다짐을 입 속에서 우물거렸다. 창 밖으로는 시장통이다. ‘해동’다방 2층, 마담과 여급 두엇이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다. 그렇다. 순천은 나에게 음습한 도시다.

   순천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내게, 이제 막 순천이라는 공간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의 비릿한 감상은 오히려 신선한 것이었다. 메모장에 일부 문장을 옮겨 적고 “‘해동’다방”이라는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마담과 여급 두엇이 무료하게 TV를 보”던, 기형도가 순천에 대한 음습한 감정을 완성했던 그 장소에 가보고 싶어졌다. 헌병으로 재보직을 받고 처음 갖게된 휴가에서, 드디어 그 장소를 찾아 나섰다. 순천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장으로 가서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해동다방이라는 간판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 몇 분께 물어보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 입주해 있는 가게의 사장님들께도 여쭈어보았지만 해동다방을 알고 있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이 도시는 짧은 시간의 여행자에겐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는 것이다. 사내들은 두서넛씩 모여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나 가까이 가도 무슨 내용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말하는 사내들. 흐릿한 하늘엔 한 점의 별도 보이지 않는다. ‘해동’다방 2층, 이젠 일어서자. 풀기 묻은 바람이 횡행하는 거리로 나는 나갈 것이다. 나는 이 도시를 내 몸의 일부분처럼 느낀다.

 

   2012년 가을학기. 장률 감독님의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다. 단편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데, 마땅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하루는 수강생들끼리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문득 해동다방 생각이 났고, 간절히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은 찾지 못한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다. 감독님께서는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정작 내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진척이 너무 더뎠고, 나는 한 달여를 방황하다 다시 해동다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12년 11월 1일 목요일. 시나리오 수업은 오전 10시 시작이었다. 그 동안 써놓은 시나리오는 모두 찢어버렸고, 이제 ‘해동’다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리라… 새벽에 일어나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미리 학교에 가서 맑은 정신으로 한 줄이라도 더 시나리오를 써 보려는 생각이었다. 7612번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짧은 여행의 기록]을 꺼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기형도의 글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순천이 아니라 광주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버스가 양화대교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기사님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1월 1일이니까, ‘오늘’ 하루는 어디선가 김현식 아니면 유재하를 만나게 되리라, 그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문제는, 하필 그 순간, 내가 기형도를 따라 망월동에 들렀다 나오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제3묘원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봉고차에 탔을 때 50대 후반(혹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소녀와 함께 봉고차에 올랐다. 퍼머 머리에 찌든 얼굴, 갈라진 두툼한 입술, 넓적한 코, 촛점이 흐린 눈동자, 검게 탄 피부, 가는 몸매, 흰 반팔 남방, 갈색 면바지, 굽없는 흰 샌들을 신은 촌부였다. “앞에 타세요.” 운전사가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기사가 나를보며 말했다. “이한열(李漢烈)이 어머니에요.” 나는 좌석 앞으로 옮아갔다. 여인이 힘없이 인사를 했다. “묘지 다녀가세요?” 나는 “한열이 선뱁니다. 연세대학교 선배예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학교 보내면 뭘해요. 이렇게 돼 버렸는데.” 여인은 말했다. “이따금 이곳에 다녀갑니다.” 늙고 지친 얼굴이었다. 퍼머 머리의 절반이 백발이었다. “한열이 누이의 딸이예요.” 봉고차는 그녀와 나만을 싣고 달렸다. 

   모르겠다. 김현식의 목소리 때문에 더 그랬을까?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기형도가 이한열의 어머니와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퍼머 머리에 찌든 얼굴, 갈라진 두툼한 입술,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넓적한 코, 촛점이 흐린 눈동자, 검게 탄 피부, 이렇게 비가 왔어요. 가는 몸매, 흰 반팔 남방, 갈색 면바지, 굽없는 흰 샌들은 신은 촌부,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고개를 들면 바로 옆 좌석에 어머님이 앉아 계실 것만 같은, 잔인할만큼 정성스러운 묘사. 이한열이 어머니에요. 버스가 연희동에 다다를 때까지 눈물을 멈추기 힘들었다. 내가 병신같았다. 미친놈처럼 – 미치면 정말 그럴지 모르겠지만 – 울었다.  

   기말에 제출한 ‘해동다방’이라는 시나리오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 낯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내 이야기에, 어떤 의미에서든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지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 그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시나리오는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 광주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에, 어쩌면 해동다방 시나리오를 다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작하게 된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반드시 ‘이야기’를 덧댈 필요는 없을 지 모른다. 그래도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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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라인업에 로버트 알트만의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1973)>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도, 원작 소설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도 매우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상영 소식이 특히 반갑다. 극장에서 필름으로 꼭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인데… 상영시간표를 보니 안타깝게도 아트시네마에서 보기는 힘들 듯;;

2012년 여름부터 약 1년간 모 웹진에 영화와 책을 함께 소개하는 글을 매주 기고했었다. 그 중에 ‘기나긴 이별’을 다룬 글도 있어서 여기 옮겨 본다. 잡문이라 깊이는 별로 없고 수사가 많다. 무리한 비유까지: ‘필립 말로(of  기나긴 이별) = 고독남(of 마이클 만) in 로스앤젤레스(of 데이빗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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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말로, 고독왕.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명의 “레이먼드”에 대해서 들어 보았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할 만큼 카버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인터뷰에서 레이먼드 챈들러를 “내 영웅”이라고 표현 할 만큼 챈들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계에도 두 명의 레이먼드에게 푹 빠졌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지난 2006년에 81세로 타계한 영화 감독,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이다. 틀에 박힌 제작론에서 벗어나 할리우드의 반골이라 불릴 정도로 우직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해 온 알트만은, 역시 이 두 명의 레이먼드, 레이먼드 챈들러와 레이먼드 카버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낸 바 있다. 영화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1973)과 <숏컷, Short Cut>(1993)이 그 결과물인데 이 중 <기나긴 이별>에 대한 얘기를 더 해보려고 한다.

   영화의 원작소설 《기나긴 이별》은 1954년에 출간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추리작가이며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로 불리는 레이먼드 챈들러는 그의 첫 장편 《빅 슬립, The Big Sleep》에서부터 필립 말로라는 사립 탐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기나긴 이별》에서도 필립 말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루키의 인터뷰를 다시 언급하자면, 그는 《기나긴 이별》을 열 번 이상 읽었다고 강조하며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인물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고 매우 독립적”이며 “외롭긴 하지만 고상한 삶을 찾는” 캐릭터들로서 이것이 본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외롭긴 하지만 고상한 삶을 사는 사립 탐정… 흥미로운 것은 《빅 슬립》에서부터 출발하는 필립 말로의 하드보일드한 모습이 챈들러의 마지막 작품인 《기나긴 이별》에서는 왠지 날이 무뎌지고, 지쳐 보이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때문일까? 어깨가 조금 더 쳐진 것 같은 말로의 모습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알트만의 누아르 필름에 딱 어울리는 캐릭터로 승화된다.   

   먼저 밝혀두는데, 소설 《기나긴 이별》과 영화 <기나긴 이별>은 결말이 다르다! 앞으로 소설과 영화를 접하실 분들을 위해 결말은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립탐정 필립 말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친구 테리 레녹스의 부탁으로 그를 멕시코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경찰에 붙잡혀 심문을 당한다. 경찰은 레녹스가 그의 부인 실비아를 죽이고 도주중이라고 얘기하지만 필립 말로는 친구의 결백을 믿는다. 한편 말로는 실종된 소설가 남편을 찾아 달라는 아일린 웨이드의 의뢰를 받게 되고 이어 마티 오거스틴이라는 갱으로부터 레녹스가 훔쳐간 자신의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한다. 말로는 웨이드 부부의 사건을 해결하는 도중 이 모든 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탐정 소설의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책이나 영화의 플롯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역시 필립 말로라는 인물 때문이다. 소설에서 어떤 출판업자와 바에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 말로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 허가받은 사립탐정이고… 외로운 늑대인 셈이죠. 미혼에 중년이고 부자도 아니지요… 술과 여자와 체스… 양친은 돌아가셨으며 형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얻어맞고 쓰러진다고 해도 인생 끝난 듯이 충격 받을 사람들은 없죠.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고…”

   말로의 ‘고독 지수’가 증가할 수록 챈들러의 문체는 더 흐느적거린다. “한 시간이 병든 바퀴벌레처럼 기어갔다. 나는 망각의 사막에 있는 모래 한 알이었다 나는 총알이 다 떨어져버린 쌍권총 카우보이였다.” 이 문장들 사이에, 있어야 할 구두점이 하나 없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곱 페이지로 서술되어 있는 28번째 장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필립 말로가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구 뱉어내는 감상만 기록되어 있을 뿐, 이야기 전개에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문장은 맨 마지막 문장 딱 하나에 불과하다. “그때 총소리가 들려왔다.” 

   로버트 알트만이 연출한 필립 말로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다른 소설들이 이미 영화화된 것이 꽤 있었기 때문에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도 영화 팬들에게 아주 낯설지만은 않는데, 특히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1964)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필립 말로가 많이 언급된다. <빅 슬립>의 필립 말로가 강인하고 섹시한 고독함을 가지고 있다면 <기나긴 이별>의 필립 말로는 고독 그 자체, 달관자의 고독, (영화에서 테리 레녹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저’의 고독을 체화한 인물이다.

   고독한 캐릭터라 하면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 Samurai>(1967)에서 알랭 들롱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사무라이>가 알랭 들롱이 침대에 누워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기나긴 이별>도 필립 말로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알랭 들롱이 연기하는 제프 코스텔로는 우아하지만 엘리엇 굴드가 연기하는 필립 말로는 측은하다. 말로의 고양이는 침대에 누워있는 말로를 계속 괴롭히고, 이 고양이는 말로가 사료를 챙겨주지 않자 가출해 버린다. 고양이에게도 버림받는 말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화 내내 필립 말로가 타인에게 외면당하는 소소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그는 “난 괜찮아(It’s okay with me).”라며 혼잣말 하고 가던 길을 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기이한 말로의 모습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알트만이 영화 안에서 그리는 세계가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마약에 중독되었는지 늘 몽환적인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대는 이웃집 여인들, 환자들보다 더 이상해 보이는 정신병원 직원들, 유난히 멍해 보이는 마티의 부하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폭력장면들까지. 누구나 소통의 좌절을 경험하고, 상처받고 쉬이 지쳐버릴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모습(특히 60년대 후반의 미국, LA)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기나긴 이별>을 통해 우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버트 알트만이 레이먼드 챈들러,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두 명의 레이먼드가 모두 남부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활동을 하고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캔자스 시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대부분의 작품 활동을 남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가 있는 LA에서 하게 된다. 아마도 그가 생활하며 늘 바라보는 LA의 숨겨진 모습을 챈들러와 카버가 날카롭게 짚어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영상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을까?

   LA라는 도시를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영화적 장치로 활용한 감독으로는 로버트 알트만뿐만 아니라 마이클 만과 데이비드 린치가 먼저 떠오르는데, 로버트 알트만의 <기나긴 이별>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마이클 만 영화의 고독한 캐릭터가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괴기스러운 풍경 속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물론, 알트만이 훨씬 선배 감독이고 비약이 심한 비유이긴 하지만 같은 공간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고 있는 감독들의 작품 세계가 단단하지는 않아도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흥미로운 요소를 더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기나긴 이별>의 음악을 언급하고 싶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음악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던 감독이다(재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캔자스 시티, Kansas City>(1996)를 꼭 챙겨보시길!). <기나긴 이별>에서는 동명의 테마곡 “The Long Goodbye”가 다양한 버젼으로 편곡, 연주되어 영화 내내 흘러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 필립 말로를 만나러 가는 테리 레녹스의 카 라디오에서 “The Long Goodbye”가 흘러나오고 이 노래는 이어지는 다른 장면, 필립 말로의 차 안, 그리고 말로가 방문하는 마트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같은 곡이지만 다른 뮤지션이 연주한 버전이다). 곡조가 소설과 영화 모두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이다. Dave Grusin Trio가 연주하는 “The Long goodbye”를 들으며 여유롭게 소설 《기나긴 이별》을 읽을 수 있다면 그만한 휴가가 없을 것 같다. 영화 <기나긴 이별> DVD도 챙기시는 것 잊지 마시고.

20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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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학부 수업 기말 시험 감독을 한 번 들어갔다. 수업명은 ‘사이버커뮤니케이션’. 원래 언론학 대학원생들이 맡는 수업이었는데, 감독 인원이 부족해 영상학 조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래서 내가 감독을 들어가게 되었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가지러 언론학 학생회실에 가니, 나와 함께 시험을 진행할 언론학 조교 한 분이 미리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겨갔다고, 그냥 시간에 맞춰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그 곳에 있던 조교분이 설명해 주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시험 진행을 맡은 언론학 조교분이 답안지 갯수를 세어보고 있었다. 아는 분은 아니고, 그냥 지나가며 몇 번 보았던 얼굴이다. 인사를 드리니, 그냥 앉아 계시기만 하면 되요, 하고 인상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크지 않은 키에 선한 얼굴, 뿔테 안경에 두툼한 울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학부생들 보다 오히려 더 학부생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시험 시작 10분 전인데,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고 쓰고 있다. 나는 강의실 뒤로 걸어가 감독용으로 끝에 빼어 놓은 책상 위에 걸터 앉았다. 그래도 시험 시간동안 가만히 있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언론학 조교분에게 여분의 답안지를 챙겨 다시 뒤에 있는 감독석으로 돌아왔다. 시험 중에 답안지를 더 요청하는 학생들 중 강의실 뒷편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답안지를 챙겨 줄 생각이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강의실에는 정적이 흐른다. 빌링슬리관은 오래된 건물이다. 이 강의실에는 어느 구석이나 천장에 온풍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난방은 오직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작동하는 ‘라지에이터’에 의존해야 한다. 마침 ‘라지에이터’가 작동하는 시간이라 쇠파이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증기 소리, 파이프가 증기의 압력에 움찔댈 때마다 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이따금씩 강의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하지만 정적을 감지하는 것도, 그 정적이 어떤 소음에 상처 입는 것도 시험 감독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70여명의 학생들은 모두 책상 위에 고개를 푹 숙인채 빠른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몰두해 시험 답안을 적어 내려가는 학생들과 그들의 구부린 등허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생각이 아주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고 조금은 쓸쓸했다.   

  100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스마트폰을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꾸고 그냥 내 앞에 이 생경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기로 한다. 들리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그러면 무언가 또 재미있는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절대 지루할 수 없는 시간이다. 

  쓰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한다. 노트 필기보다 랩탑을 두드리는 것에 더 익숙한 세대들. ‘사이버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을 수강했던 이 학생들이 ‘아직’ 필기로 시험을 치뤄야 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저렇게 긴 답안, 그러니까 장문의 글을 랩탑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필기했던 것이 내게는 매우 오래 전 일이다. 정기적으로 장문의 글을 필기해야 하는 학부생들의 ‘손’이 어쩌면 지금 나의 손보다 훨씬 감각적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중이던 친구에게도, 나는 손편지가 아닌 전자우편을 보냈었는데(교도소에는 전자우편 내용을 출력해 제소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손편지 대신 전자우편을 보낸 것을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연쇄를, 내용뿐만 아니라 손글씨라는 메시지 전달 형식 때문에 더 반갑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공들여 무언가를 직접 손으로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캠퍼스에서 더 많은 손글씨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은 계획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가 ‘쓰는 행위’에 대한 에세이 영화(?)인데 어쩌면 이 대자보들의 등장이 주요한 모티프가 될 수도… 그런데 아직 생각 뿐이지 정말로 기약이 없다. 

 

  한두 명씩 학생들이 자리를 뜬다. 학생들이 떠난 책상 중 몇몇에는 지우개 가루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지우고 다시 쓴다는 것. 흔적이 남아있는 글쓰기. 학생들이 남아있던 흔적으로서의 지우개 가루. 비뚤어진 책상과 의자. 책상 위의 낙서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샤프심 한 개. 또각거리던 소리들. 아주 낮은 탄식. 기지개 켜는 소리.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수고하셨어요. 어느 겨울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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