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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영화관 북카페’)

  

화씨 451

‘영화관 북카페’_ 2012.6.5_ 백종관

 

가장 많은 책들이 언급되는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하니 The Divine Comedy의 “The Booklovers”가 머리 속에서 자동 재생중- ). 책은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서재에 앉아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라면, 주인공 뒤쪽으로 서가에 꽂혀있는 무수한 책들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게 될 것이다. 감독의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아마 카메라의 초점은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을 것이고 책들은 단지 배경으로 처리가 될 텐데 이것을 책이 언급되고 있는 장면으로 보기는 힘들다.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되는 매체이므로 영화에서 구체적인 ‘언급’이란 배우의 대사나 나레이션, 클로즈업 된 이미지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독한 영화 <화씨 451>(Fahrenheit 451, 1966)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책이 언급되는 영화다.  

   래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화씨 451>은 주인공 몬탁(Montag, 배우 Oskar Werner)이 책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정확히 연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미래 사회. 몬탁은 ‘방화서’에서 일하는 ‘방화수’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집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지어져 더 이상 불을 끄는 소방수의 역할이 필요 없는 세상. 방화수는 책을 찾아내어 불태우는 사람이다. 세속적인 정보만이 취급되고 빠른 속도의 문화에 중독된 사람들이 쾌락만을 추구하게 된 사회. 독서는 사람들이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이유로 불법 행위가 되었고 불태워야할 아이템이 되었다. 촉망받는 방화수였던 몬탁은 젊은 이웃 여인 클라리세(Clarisse, 배우 Julie Christie)와의 만남을 통해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방화 업무 도중 몰래 챙겨온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 불법 행위는 아내로 인해 고발당하고, 국가 조직에 의해 추적당하는 몬탁은 그와 같은 반체제 인사들이 숨어 지내는 숲으로 몸을 은신한다. 

   <화씨 451>의 주인공이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는 만큼, 소설과 영화 모두 많은 책들이 언급된다. 스스로가 열렬한 책 수집가였던 트뤼포는 원작에 언급된 책들 보다 더 많은 책들을 영화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몬탁이 암송하는 방화서의 공식 슬로건은 “월요일에는 밀레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인데, 영화에서 몬탁의 대사를 보면 화요일에는 톨스토이, 토요일에는 쇼펜하우어와 사르트르가 슬로건에 추가된다. 영화에서 책을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순간순간 불에 타들어가는 책들이 클로즈업 되는데 이 책들은 모두 트뤼포가 직접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감독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불타는 책들 중에 영화의 원작 소설인 [화씨 451](1953)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동 같은 트뤼포는 이 영화의 ‘기원’을 태워버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불태워 버린다. 본인이 필진으로 있었던 영화잡지 [까이에 뒤 씨네마] 역시 불타고 있는데,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스틸 사진이 커버로 쓰인, 그 불타던 [까이에 뒤 씨네마]의 커버스토리를 쓴 사람이 바로 프랑수아 트뤼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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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960 issue of “Cahiers du Cinéma”, with Jean Seberg in Á bout de souffle on the cover

   원작자 래이 브래드버리는 본인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번역서에는 브래드버리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그는 트뤼포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자평한다. 줄리 크리스티라는 배우가 ‘젊은 이웃 여인’과 몬탁의 아내로 1인 2역을 한 점, 철학자 파버와 로봇 사냥개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빠진 점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브래드버리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특히 파버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는데, 소설에서 작가인 브래드버리를 대신해 빠른 속도에 매몰되어 가는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파버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는 파버와 더불어 방화서 서장 비티가 몬탁에게 하는 말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비티는 몬탁과 적대하고 있는 국가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도 한 때 독서에 탐닉했던 사람으로서 파버와 함께 브래드버리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목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매체의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작가와 감독의 성향에 따라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소설 [화씨 451]의 경우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못한 멋진 장면 묘사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늘 몬탁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로봇 사냥개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야기 초반, 몬탁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들의 묘사와 계속 교차되며 서술되는데 그 긴박감이 대단하다. SF 영화지만 1966년에 만들어진 만큼, 영화 <화씨 451>에 대단한 CG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소설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 또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오프닝 타이틀부터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투자자, 제작자나 영화의 주요 스탭의 이름이 스크린에 텍스트로 나타나는데 <화씨 451>에서는 계속 색깔이 바뀌는 어떤 풍경들만이 화면에 비춰질 뿐이고 대신 글로 쓰여 졌을 내용을 나레이터가 직접 읽어 준다. 이것은 문자 매체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영화의 내용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현한 것이다. 주인공 몬탁이 집에 돌아와 무언가 커다란 종이를 펼쳐보는 장면이 있는데, 누가 봐도 보통의 신문 크기이지만 종이에 글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그림들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브래드버리가 묘사한 미래 사회 모습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멋진 장치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 감시 지배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책을 암송하며 눈 내리는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은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선사해 준다. (트뤼포의 회고에 따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사전 계획대로 촬영되었는데 눈이 내리는 마지막 장면만이 즉흥적으로 촬영된 부분이라고.)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 제작자 라울 레비로부터 [화씨 451]을 처음으로 소개 받은 것은 1960년이었다. 그는 소설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화씨 451>은 트뤼포가 영어로 찍은 첫 영화였고, 첫 SF 영화였으며 게다가 첫 컬러 영화였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과정은 트뤼포 평전,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트뤼포는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벨바그를 이끈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으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치열하게 구축한 작가로, “영화사상 가장 영화를 사랑한 감독”(?)이라 불린다. 영화중독자 트뤼포의 파란만장한 삶이 궁금하신 분들은  [화씨 451]과 더불어 그의 평전을 꼭 한 번 접해보시와요…  2012.6.5 

 

 

 

 

2 comments
  1. 수니옹 says: 2017/08/141:48 am

    영화도 봐야겠다. 근데 혹시 2012년 6월 5일- 레이 브래드버리가 사망한 날인 것 알고 썼을까? +_+

  2. Name says: 2023/12/1312:22 pm

    wKzDFIUAYuR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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