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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 ‘현존의 직접성’은 잠재적이고 실현 가능한 ‘행위의 직접성’과 중첩되었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멀리 떨어져서도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가 별로 없었다 – 또 손에 쥐고 있는 도구로는 가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이 고통당하는 장면에 노출당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도덕적 선택 전체는 직접성, 즉 얼굴과 얼굴을 맞댄 만남과 상호작용이라는 좁은 공간에 거의 완전히 갇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과 악 사이의 선택은 – 그러한 것에 부딪힐 때마다 – ‘삶의 주권적 표현’에 의해 고무되고, 영향받고, 원리상으로는 심지어 통제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윤리적 명령의 침묵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숨이 막힐 듯하다. 그러한 명령이 삶의 주권적 표현을 유발하고 은밀히 이끌어주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들은 직접성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그러한 표현들을 촉발하고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은 멀리, 직접성/인접성의 공간을 훌쩍 벗어난 곳으로 떠나버렸다. 이제 우리는 (어떤 것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주변에서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에 덧붙여 매일 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행되는 잔혹 행위에 대한 ‘간접적인’(미디어화된mediated) 지식에 노출된다. 지금은 누구나 텔레비전television을 갖고 있다. 하지만 ‘텔레-액션tele-action’의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우리가 볼 수 있고 완화시키거나 치유할 수 있는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주권적 표현’이 (엄청나게 어렵겠지만) 처리할 수 있는 도덕적 선택의 상황에 처하게 한다면 –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과 우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사이의 점점 더 벌어지는 격차는 모든 도덕적 선택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을 전례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즉 우리의 타고난 윤리적 자질이 익숙하게 작용할 수 없는, 심지어 그럴 수조차 없는 높이까지 끌어올릴 것이다.

무력함에 대한 그처럼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자각으로 인해 우리는 피신처를 찾아 달아나고 싶어진다. ‘처치 곤란’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음’으로 번역하고픈 유혹은 끊임없으며, 점점 커지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p.2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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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SNS 타임라인에는 복마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가운 소식들이 조금씩 섞여 있다. 시대가 하 수상하고, 유감스럽게도 관심사가 그 수상한 사건들의 그물 속에 묶여 있는 덕분에 나는 울음바다와, 역시 웃음바다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서둘러 SNS에서 빠져 나온다.

정신분열이 필수불가결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온전한 정신으로 피 맺힌 절규와 함박웃음의 교차 상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런 극과 극의 ‘텔레비전’들에 노출되고 또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자주 되뇌었건만 이미 우리는 일찌감치 괴물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비전’ 숫자 만큼의 ‘액션’ 주체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은 성실하게 감성 변태들을 양산해 낸다 . 

가끔 어떤 문구가 머리 속에서 떠오르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트위터나 페이스북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내가 포스팅 하려했던 트윗의 온도와는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는, 뜨겁고 차가운, 타임라인 위의 다른 메세지들을 바라보면서 금새 기가 질린다. 나는 쉽게 내 감정의 온도를 뺏겨버리고, 녹아내리는 ‘멘탈’을 보존하기 위해 자꾸 달아난다. 

 

그리고 다시 해맑게 돌아가겠다는 선언 혹은 
고약한 짓으로, 이런 패턴을 응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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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아프길래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잠시 왔다갔다하다
이제 거울을 보니 눈이 빨갛다.
랩탑을 닫고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밤인데, 어둠 속을 달리면 조금 나아질까 옷을 갈아입고 달리러 나간다.
번화가가 아닌데도 동네는 너무 눈이 부셔
은은한 달빛만 어둠을 감싸는 공간을 그리워하며 더 어두운 곳을 찾아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왼쪽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졌다. 
낯설지 않는 통증에 장경 인대 마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을 기억해 낸다.
Iliotibial Band Syndrome. 
신드롬이 원래 이렇게 쓰이는 용어구나, 하고 생각했었지. 

집으로 천천히 걸어 돌아와 씻은 후 
방 바닥에 옆으로 누워 병원에서 오래 전에 배웠던 스트레칭을 반복한다. 

몇 번을 뒤척이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충혈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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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주: …무형적인 예술에 대한 아카이빙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함영준: …어떤 체험 자체를 아카이빙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면 결국은 비디오로 기록하는 게 전부인데 실제로 비디오로 누가 기록할 것인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가 계속 남죠…  
(섬을 위한 네트워크: ‘아트 폴더’ 기획 좌담회, [인문예술잡지 F] 8호] )
 

   <춤, 극장을 펼치다> 영상 공정률 현재 5%(?)
   단순히 아카이브에 기록으로 남길 영상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고 실제로 그런 점을 고려하며 작업하고 있지만, 무용이라는 “무형적인 예술”을 스크린 위로 불러낼 때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여전하다. 위의 글에서 유운성 평론가는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논평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갖는 공연예술가들이 적지 않음을 언급하며 “공연 자체와는 별도로 예술가들이 평론가들과 논쟁을 하거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히는데, 어쩌면 그런 차원에서 이번 영상 작업을 무용 공연에 대한 논평의 차원에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논평이라는 것은 결국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물에 담긴 무용 영상이 원래의 호흡과 리듬을 잃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아니 이 걱정은 원래 내가 안 하기로 했던 부분이지만, 실제로 내가 직접 무용을 했던 것을 기록한 어느 영상을 보았을 때 느꼈던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에… 안무뿐만 아니라 장소성도 매우 중요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고민은 배가 되는데, 그래서 즐거움도 두 배.
   Tacita Dean의 <Craneway Event>가 궁금한 데 영상을 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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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in delon

 

   최근에 어디선가(아마도 영화관이었을텐데) 지나가는 소리로 “요새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랭 들롱을 알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 속에 앨범 커버 한 장이 바로 떠올랐다. The Smith의 [The Queen is Dead] 앨범. 지금이야 ‘알랭 들롱’하면 <레오파드>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는 얼굴이나 <사무라이>에서의 암살자의 고독함이 먼저 떠오르지만, 내가 알랭 들롱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The Queen is Dead] 앨범을 구입해 그 ‘앨범 속지’를 펼쳐보고 난 후였다. 

   ”원래 이앨범의 제목으로 내정되었던 것은 ‘여왕은 죽었다.’가 아니라 ‘마가렛을 단두대로(Magaret On The Guillotine)’였지만 모리세이는 대처수상에 대한 오랜 혐오의 이 곡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고 해서 지금과 같은 제목으로 수정되었다.(‘Magaret On The Guillotine’은 나중에 모리세이의 솔로 앨범 ‘Viva Hate’에 실려 영국내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르기도)’여왕은 죽었다’는 하버트 셀비 주니어의 유명한 소설’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인용된 구절이고 이와 매치된 앨범 재킷은 알랭들롱의 얼굴, 또한 초판 부클릿에는 제임스딘의 사진까지 삽입되어 모리세이스타일 아트 수법의 전형을 엿볼수 있는 좋은 예를 제공하고 있었다.(모리세이는 옛 티비/영화물의 대팬이자 제임스 딘의 추종자이다.)…… 95.11.14 성문영(HOT MUSIC)”           thanks to onthesidewalk.com

   국내 라이센스는 95년에 발매된 모양인데, 내가 이 앨범을 구입한 건 99년. 결국 이것도 다 Radiohead 때문… 라디오헤드 멤버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으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스미스였기 때문에 스미스 음반을 구해 들어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숙제였다. 여러 음악잡지에서 스미스 음반 중 [The Queen is Dead]를 가장 명반으로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구입했던 기억.
  스미스 그리고 알랭 들롱뿐만 아니라 재즈(찰스 밍거스)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현대 음악(펜데레츠키)을 접하게 된 것도 다 라디오헤드 때문이다. 아, 배우라면 한 명이 더 있다. 드니 라방!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 보다 먼저 드니 라방을 만난 것이 Thom이 피쳐링했던 Unkle의 곡  ”Rabbit in your headlights” 뮤직비디오였으니. 오랜만에 I’m a rabbit in… your headlights…

  

  

…장률 감독님께서 이번 학기 첫 수업시간에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보여주셨는데, 영화 속 소년들이 몰래 극장에 들어가 봤던 영화가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이었던 것 같다. 알랭 들롱의 얼굴이 한 컷, 아주 잠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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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시작되고 해원이 그녀의 엄마와 사직공원을 걷는다. 나는 2012년의 어느날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날 나는 종로도서관을 방문해 어떤 책을 빌렸거나 혹은 반납을 했고, 도서관을 나와 사직공원 입구 즈음에서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경복궁 방향에서 내 쪽을 향해 걸어오던 한 남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이었다. 녹색 패딩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닐 수도 있다. 옷차림이 두꺼웠던 것은 확실하다. 계절은 아마도 늦겨울, 초봄이 아니었나 싶다. 두 명의 여성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직 멍하니 서 있었고 세 사람은 사직공원 쪽으로 걸어간다. 공원 앞에 파룬궁을 홍보하는 패널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앞에 서서 잠시 그 홍보물들을 바라보다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멈춰 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로케이션 헌팅 때문에 사직단에 왔나보다 생각했다. 두 여성은 함께 일하는 영화 스탭일 것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사직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공원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멈춰섰다. 그냥 빨리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그때 그 사진을 확인하고 싶어서 폰 사진들을 옮겨놓은 하드디스크를 뒤져 본다. 사진이 많아서 쉽게 찾기 힘들다. 당시 날짜를 가늠하기 위해 종로도서관 홈페이지, 정확히는 서울시교육청 평생학습관/도서관 시스템에 로그인 해 대출/반납 기록을 살펴본다. 총 대출 자료수는 105권으로 나오고 검색 첫페이지에는 검색 결과가 10건 밖에 안 나오는데 뭔가 오류가 있는지 검색결과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아 다른 대출/반납 기록은 조회를 할 수가 없다. 확인 가능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2012년 4월 25일에 대출해 5월 18일에 반납한 [우리 안의 과거]. 4월 말에 패딩을 입었을리 없다. 그날 나는 ‘우연히 홍상수를 보았다’는 내용의 트윗을 작성했었는데, 몇 시간 후에 지워버린 기억이 있다. 트윗을 삭제하지 않았다면 그 날이 정확히 몇일이었는지 알 수 있을텐데. 영화의 크랭크인 날짜를 검색해 본다. 3월 15일. 헌팅은 그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정도의 내용을 단서로 사진을 찾아본다. 사진을 찾을 수 없다. 아마 사진을 찍지 않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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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읽었던 책들에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동원되더라도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기껏해야 그 명칭을 바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노예 상태보다 더 교활한 것이기에 더 나쁜 형태들의 노예 상태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 인간을 어리석고 불만 없는 기계 같은 것으로 변화시켜, 실제로는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게 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거나, 인간적인 즐거움과 여가를 보내는 오락들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 만족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열만큼 광적인, 일에 대한 취향을 인간에게 키워 주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 혹은 상상력의 노예 상태보다는 나는 여전히 우리의 사실상의 노예 제도를 택하겠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입을 빌어, 고대 로마제국의 노예 제도보다 “더 나쁜” 형태의 노예 제도를 상상한다. 이 가상의 “노예 상태”는 지금 현대 사회 시스템과 유감스럽게도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전쟁열만큼 광적인” 스펙타클의 희열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스펙타클의 풍요 속에서 수행되는 허위적인 선택은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 투쟁은 양적이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충성을 고무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것은 허위적인 해묵은 대립, 지역주의, 인종주의를 소생시키며, 이런 반목들은 소비의 천박한 위계서열들을 터무니없는 존재론적 우월성으로까지 끌어 올린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선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끊임없는 사소한 대결들이 가소로운 이해관계들을 동반하며 거듭 설정된다.
   풍요한 소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주로 청년과 기성세대 사이의 스펙타클적 대립이 허위적인 역할들 중에서도 맨 앞에 등장한다. 이것이 허위적인 까닭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기성세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기 드보르가 이미 1960년대에 목도한 “스펙타클의 풍요”로움은 여전하다. 아니 그 “공허한” 투쟁은 양적인 면에서 60년대에 비해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했다.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선거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술은 마치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관찰하고 기록한 감상문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향유하던 “인간적인 즐거움”을 잃고 이제는 모니터 앞에 앉아 끊임없이 그들이 인터넷에 의견을 남기고, 댓글을 달아댈 ‘사건’들이 터지길 기대한다.    

   자유처럼 느껴진 것이 실제로는 전혀 자유가 아니었을 가능성,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이 ‘객관적’으로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것임에도 이에 자족할 가능성, 노예제도 속에서 살면서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자신을 해방할 그 어떤 급박한 필요도 느끼지 않게 되어 참된 자유를 누를 가능성을 저버리거나 박탈당하게 될 가능성에 관한 것…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 근대]

   늘 바쁘게 지내는 편이다. 쉴새없이 해야할 일들이 솟아난다.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어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나도 시스템의 노예로서 충실히 복무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노예임을 깨달은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바쁨’을 기준으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가의 여부를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만들어낸 덧없는 목표들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퇴사를 결정하면서 이미 러닝 트랙에서 한 번 벗어나긴 했지만, 이후 다른 트랙에 (좀 더 의지적으로) 다시 진입한 덕분에.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바쁘게 지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이 아닌 다른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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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Way to work, 2012) 

 

출근길에 한강을 건넌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 치열한 삶 속에서도 한강은 너무 넓고 고요해
그 존재가 때론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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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기간: 2010.4.10 ~ 2011.5.16
 (직장생활: 2008.12.29 ~ 2011.5.16)

- 촬영기기: iphone 3GS
- 총 3천여 컷 중에 1120컷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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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1, 06:48 AM                                                                 9/7, 07:0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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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07:03 AM                                                                  9/29, 06:3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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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07:34 AM                                                             10/9, 07: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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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07:11 AM                                                               11/10 06:3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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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07:58 AM                                                                2/22 07:3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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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07:08 AM                                                                  3/16 07:1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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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e? : Comment le cinéma est devenu le plus singulier des arts

이정하 선생님이 번역한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에서,
“자크 오몽과의 인터뷰”
(2008년 2월 17일, 19일, 인터뷰어 이정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며, 영화는 시각예술이고, 영화 이미지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가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형상화 작업이라는 것(후에 ‘형상성figural’이라 부르게 된 것)이 이 책(끝없는 시선L’oeil interminable)의 미학적 테제이다…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에 일반적으로 흥미를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 ‘이미지로서의 사고’ 혹은 ‘시각적 사고’의 창조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허술하거나 말도 되지 않는 영화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아주 창조적인 이야기체를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왜 시각적 소여인가. 나의 가설은, 이 시각적 소여들이 우리에게 의미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주어진 것들은 이야기체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통해 관객에게 ‘작용’한다… 

…만약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먼저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다른 것들에 주목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습관, 교육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자발적으로 주목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이야기의 망각이라는, 특수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거의 다 잊어버리기까지 하면서… 가능한 한 바라보기 위해…
…영화를 볼 때, 형상 혹은 일반적인 인간 형상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아주 많은 흥미로운 것들이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 ‘분석’은 영화에서 흥미롭다고 판단된 형상적 요소들을 포착하는 것인데, 이것이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인 미메시스의 관점에서 투명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델과 닮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형상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바로 거기 현재한다. 기형화, 예기치 않은 제스처, 의외의 색채, 흐릿함 등 이미지를 흥미롭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모두 형상의 작업으로서 현전한다는 것에 일치한다…
…영화에는 이야기의 진행에 반드시 본질적이지 않음에도 거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들이 있다. 이것이 형상성이다. 형상성이란 무엇인가. 이미지 내에 무언가가 현전하는 순간, 즉 단순히 미메시스적 관점에서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대로 거기 현재하고 있는 것이다. 모호하고 수수께끼와도 같은. 우리는 바로 여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화가 시각예술이라는 관점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영화에서 무언가를 재현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 아닌 것에 흥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업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가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있어 왔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영화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에 나는 동의한다. 영화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영화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서, 다른 예술과는 달리, 홀로 시를 쓰거나 – 물론 주변부에서 홀로 시적인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 소수의 감상자를 위한, 혹은 소수의 재력가의 소비 대상이 되는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자금의 회수와 다수의 관객을 요하는 산업이다. 영화의 경제는 민주주의의 경제이며, 당연히 다수의 대중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각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영화는 의도치 않게, 다시 말해 그렇게 되려 한 적이 없이 시각적인 예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기획이 시각예술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영화의 기획은 오히려 서사예술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돈을 벌거나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다른 영화를 만들거나 하는 일, 즉 영화를 사회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 곧 ‘산업’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각예술이라는 생각이 많은 대중을 끌어 모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오는 관객은 사실상 극소수다…

당신이 이미지를 바라보지 않는다 해도 이미지는 당신에게 작용한다. 결국 영화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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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Rivette: 우리는 대화(dialogue)가 영화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생각을 처분했습니다. 이 점을 받아들이고,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할텐데요. 사운드 측면 외에도, 영화사에서 소위 ‘진보’로 불릴만 한 것들, 컬러나 와이드스크린, 촬영기술 등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모든 진보가 더 완벽한 리얼리즘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Jean Renoir: 물론입니다. 모든 예술이 다 마찬가지죠. 그런데 예술의 역사에서, 완벽한 리얼리즘은 완벽한 타락을 동반합니다. 예를 들어서 태피스트리(Tapestry) 예술의 경우, 최초로 잘 알려진 태피스트리는  바이외 테피스트리(Bayeux Tapestry)인데 마틸다 여왕과 그녀의 시녀들은 그녀의 남편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벌하는 동안 태피스트리를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분명히 그녀가 사용했던 양모는 매우 원시적인 것이었고 매우 기름기가 많았을 겁니다. 염색술도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었구요. 매우 제한된 숫자의 색깔만 태피스트리에 사용되었어요. 그런데도 이 태피스트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몇 세기 뒤를 살펴보면, 태피스트리가 여전히 초기 단계였죠. 예를 들어 앙제(Angers) 지방의 묵시록 태피스트리(14세기)를 보자면, 우리는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환상적인 세계를 발견할 수 있어요. 꿈의 세계가 아닌 진짜 세계 말이에요. 태피스트리의 인물들은 현대적입니다. 태피스트리 속의 거리에서는 매일 성인, 왕, 여왕, 죄인, 천사들이 서로 마주칩니다. 겨우 원시적인 기술을 이용했을 뿐이지만 대단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훌륭한 왕, 앙리 4세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태피스트리 아트를 죽여버린거죠.

만약 이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가 아니라면, 태피스트리에 대한 앙리 4세의 어리석음은 그의 훌륭함에 대한 많은 전설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 High-warp 제작 방식이 개발되자 앙리 4세는 Low-warp 방식을 이것으로 대체하도록 했습니다. 이 기술은 더 정교하게 실을 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동시에 염색에 있어서도 큰 개선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하이-워프 태피스트리를 장려하고 돈도 더 지원하기로 결정했지요. 태피스트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을 더 사실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태피스트리에서 단순화된 패턴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된 거죠. 이제 그들은 그림을 복사하기 시작했어요. Boucher나 Watteau의 그림과 거의 완벽하게 유사한 형태로 말이죠. 오늘날, 태피스트리는 완벽한 리얼리즘으로 기능할 수 있죠. 모든 색조가 가능해요. 녹색은 10가지 다른 색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 색 그 모든 색조들, 창백한 구름에서 딥블루까지. 결과는? 태피스트리는 끝났어요. 지금 뤼르사(Jean Lurcat)같은 예술가들은 리얼리즘을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태피스트리를 되살리려고 하죠. 아아, 뭔가 슬픈 일이 일어난거죠. 그건 매우 인위적인 시도입니다. 우리는 이제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와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 수 없을 거에요.

이게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 결국은 그 목적에 실패하도록 이끈다는 점. 인간의 지능, 얼마나 파괴적인 힘인지! 지능이란 재앙이에요. 우리를 결과적으로 멍청하게 만든답니다. 지능이 우리를 추함으로 이끈다면, 지능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면, 경배하는 그 모든 것이 추한 것이라면? 자연을 모방하려는 우리의 경향성이 겨우 어떤 추함을 향한 것이었다면? 자연을 모방하고자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은 아름다운 결과를 이뤄내지 못할 겁니다.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고대의 모든 사물들은, 꼭 예술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었는데 예를 들어 고대 에트루스칸(Etruscan) 도자기를 보면 그건 정말 아름답죠. 그 모든 에트루스칸 도자기를 만든 것은 천재적인 재능이 아닙니다. 매우 원시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이것들은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가? 기술이 완벽했을 때 거의 모든 것이 왜 추한가? (기술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만든 것들은 제외하구요) 바보같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게 늘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토론과 연관지어서 나는 의문을 갖습니다. 우리의 기술적인 진보가 단지 완벽한 퇴락을 예고하는 게 아닐까. 기술적인 완벽함은 지루함만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자연을 재생산할 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에서 숲을 완벽하게 재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나무 껍질의 두께까지 알아볼 수 있어요. 스크린은 더 커지고 관객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숲 한가운데 있는거에요. 나무를 만질 수 있고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이끼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는 기계가 있을 거라구요. 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진짜 숲으로 갈겁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구요. 그들이 실재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데 왜 영화를 보러 가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예술형식의 죽음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Jacques Rivette: 당신 주장의 논리적인 귀결을 따져보면, 우리는 고감도 필름의 등장을 후회해야만 하겠군요. 

 

Jean Renoir: 그럼요! 나는 진심으로 그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해요. 우리는 필름-메이커에요. 그러니 그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초기 영화의 포토그라피를 연구해야 합니다. 첫번째 미국 웨스턴인 대열차강도를 연구해야 해요. 막스 린더의 영화들의 포토그라피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위대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콘트라스트! 나는 필름의 발전을 유감스럽게 생각해요.

나는 가시광선 내의 모든 색을 감지할 수 있는 필름, 팬크로마틱(panchromatic) 필름과 싸워왔어요. 난 그걸 최초로 사용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난 그걸 내 고유의 도구로 만들었죠. Vieux-colombier theater에서 나는 다락에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The Little Match Girl>를 찍기 위해서 였죠. 팬크로마틱필름을 이용해서! 그 당시엔 팬크로마틱은 야외촬영에만 쓰였었죠. 그리고 오소크로마틱(Orthocromatic) 필름은 실내용이었구요. 스튜디오 조명이 오소크로마틱에 맞춰 디자인되어 있었어요. 아크등, 수은증기조명 등등이 말이죠. 저는 의아했습니다. ‘팬크로마틱이 더 나을 거 같은데 왜 안쓰는거야?’ 그건 오소크로마틱의 흉한 콘트라스트를 피할 수 있는 필름이었어요. ‘팬크로마틱을 안에서도 쓰자!’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연구했어요. 뭐 내가 과학적인 지식이 매우 풍부한 사람은 아닌지라 필립스에서 우릴 도와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는 램프, 전기 시스템을 생산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내게 조언을 해 줬죠. 난 친구들과 함께 직접 기계를 만들었죠. 금속을 꼬아서 가감저항기도 만들고… 마침내 우린 <The Little Match Girl>을 찍었고 화질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꽤 괜찮았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필름을 개선했어요. 우리는 아마추어였지만 그건 매우 흥미로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에 반하는 일들을 계속 해왔던 거죠. 과거에는 ‘진보’라는 걸 믿었어요.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영화에서 촬영 결과물들은 매우 아름답고 깨끗하고 진짜같죠. 하지만 의심할 바 없이 지루하고 시시할 뿐입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그 화면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어요. 요새는 가장 완벽한 영화가 가장 지루한 영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초기 영화에서의 스릴 넘치는 그 화면의 질감을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거죠. 

 

 - 2012.11.22 한글로 옮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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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요

11월 3일, 영상자료원에서 ‘최시형’ 감독의 <경복>을 보고 왔다. 뭐랄까, 그냥 이성의 끈을 모두 풀어 놓고 굉장히 편안한 상태에서 관람을 하고 나왔다. 아, 신이수 형님의 깐죽거리는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올해 인디포럼은 일이 많이 겹쳐서 영화를 보러 갈 수 없었는데 딱 하나, 신이수 감독의 <너에게 간다>가 포함된 섹션은 보고 왔다. 우리들의 절름거리는 로맨스, <너에게 간다> 나이스).

<경복>에서는 어느 순간, “정은임의 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정은임 그리고 정성일의 목소리. 정은임 아나운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농도가 진한 말들을 하기 때문에, 가끔 체하는 느낌”을 들게할 정도의 그 감정선을 가지고 정성일은, 지아장커가 <임소요>를 만들게 된 스토리를 들려준다. 나는 그 방송을 기억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정은임의 영화음악 팟캐스트를 뒤져보니 그것은 2004년 1월 21일에 방송된 내용이었다. 내가 이제 막 신병 티를 벗기 시작할 때 쯤, 라디오를 마음 놓고 들을 수 있게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들었던 방송. 구정 연휴가 시작될 때라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방송을 기억하는 건 이 방송 때문에 나중에 임소요를 찾아 보았기 때문이다. <소무>, <플랫폼>, <임소요>를 모두 군인 신분일 때 보았다. 

전역하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겨울, 볼빨간씨가 진행하던 원음방송의 “한밤의 음악여행”에 애청자로 출연했을 때, 내가 선곡한 노래를 틀어놓고 볼빨간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정은임씨 얘기가 나왔었다. 볼빨간-서유다 형님도 워낙에 라디오 매니아이시기때문에… 정은임 아나운서의 존재는 우리 둘에게 매우 각별한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가 방송을 함께 했던 그 원음방송 방송국 바로 앞이 정은임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곳이다. 방송을 끝내고, 그 사고 장소에서 잠시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 

뭐, 그냥 그랬다는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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