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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피곤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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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님의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이 [문학과 영화]라는 수업에서는, 때론 영화보다 시 이야기를 더 오래 나누곤 한다. 12일에 개봉한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풍경>을 얼마 전에 극장에서 보고 왔는데, 마침 ‘풍경’이라는 시가 떠올라 오늘 수업에 준비해 갔다. 체사레 파베세의 [피곤한 노동]이라는 시집에 실려있는 시다.

오래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우연히 파베세의 시를 보고 반한 적이 있다. 그래서 파베세의 그 시집을 사려고 했으나 92년에 출간된 시집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 시집이 있는 도서관도 많지 않아, 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그러면 안되지만…) [피곤한 노동] 전체를 복사해 왔다.

파베세의 소설 [레우코와의 대화]를, 장 마리 스트라웁과 다니엘 위예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몇 편의 연작을 좋아한다. [피곤한 노동]도 마찬가지.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에서 나는 [피곤한 노동]에 나오는 노동자의 모습을 본다. 벨라 타르, 그리고 토리노의 두 사람 니체와 파베세. 

[피곤한 노동]에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시가 여덟 편 실려 있다. 
그 중 첫번 째 “풍경”.

  

풍경 I (Pollo에게)

이곳 언덕 위는 더 이상 경작되지 않는다. 쇠뜨기풀과
헐벗은 바위와 황량함뿐.
이곳에선 노동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 언덕 꼭대기는 메말랐고
유일한 신선함은 호흡뿐이다. 여기에 오르는 것은
힘겨운 일. 언젠가 은둔자가 올라와
기력을 되찾기 위해 줄곧 머물러 있다.
은둔자는 염소 가죽을 둘러 입고,
땅과 관목숲, 둥굴에 밴 냄새,
파이프 담배와 짐승들의 끈적거리는 냄새를 풍긴다.
햇살 속에서 홀로 파이프 담배를 피울 때면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을린 쇠뜨기풀과
똑같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이 올라와 
땀에 젖어 숨을 헐떡이면서 바위 위에 쭈그려 앉으면, 
두 눈을 하늘로 향한 채, 길게 누워 깊이 숨을 쉬는
은둔자를 발견한다. 그는 한 가지 일을 했다.
검게 탄 얼굴 위에 빨간 털이 뒤섞인 무성한 수염을
자라게 했다. 그리고 텅 빈 공터에
똥을 누어, 햇볕에 마르게 했다.

이 언덕의 계곡과 기슭은 푸르고 깊다.
포도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격렬한 옷을 입은
처녀들이 떼지어 올라와
방탕한 축제를 벌이고 저 아래 벌판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때로는 과일 바구니들의 행렬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지는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등에 바구니를
짊어지고 구부정히 집으로 돌아가며, 나뭇잎 사이로 잠긴다.
그들은 너무나 할 일이 많아 은둔자를 보러 오지 않으며,
그저 들판을 오르내리면서 힘겹게 괭이질을 한다.
목이 마르면, 포도주를 들이켠다. 병째 입에 대고
황량한 언덕 꼭대기를 향해 눈을 치켜뜨면서,
서늘한 아침이면 이미 그들은 새벽 노동에서
기진하여 돌아오고, 어느 거지 하나 지나가면,
들판 한가운데 웅덩이들에서 솟아나는 물은 온통
그의 차지이다. 그들은 처녀들을 향해 냉소를 흘리며
언제 염소 가죽을 둘러 입고 언덕 위에서
몸을 그을릴 거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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