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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지그문트 바우만"

 

 

…근래 읽었던 책들에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동원되더라도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기껏해야 그 명칭을 바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노예 상태보다 더 교활한 것이기에 더 나쁜 형태들의 노예 상태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 인간을 어리석고 불만 없는 기계 같은 것으로 변화시켜, 실제로는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게 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거나, 인간적인 즐거움과 여가를 보내는 오락들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 만족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열만큼 광적인, 일에 대한 취향을 인간에게 키워 주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 혹은 상상력의 노예 상태보다는 나는 여전히 우리의 사실상의 노예 제도를 택하겠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입을 빌어, 고대 로마제국의 노예 제도보다 “더 나쁜” 형태의 노예 제도를 상상한다. 이 가상의 “노예 상태”는 지금 현대 사회 시스템과 유감스럽게도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전쟁열만큼 광적인” 스펙타클의 희열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스펙타클의 풍요 속에서 수행되는 허위적인 선택은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 투쟁은 양적이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충성을 고무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것은 허위적인 해묵은 대립, 지역주의, 인종주의를 소생시키며, 이런 반목들은 소비의 천박한 위계서열들을 터무니없는 존재론적 우월성으로까지 끌어 올린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선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끊임없는 사소한 대결들이 가소로운 이해관계들을 동반하며 거듭 설정된다.
   풍요한 소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주로 청년과 기성세대 사이의 스펙타클적 대립이 허위적인 역할들 중에서도 맨 앞에 등장한다. 이것이 허위적인 까닭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기성세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기 드보르가 이미 1960년대에 목도한 “스펙타클의 풍요”로움은 여전하다. 아니 그 “공허한” 투쟁은 양적인 면에서 60년대에 비해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했다.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선거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술은 마치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관찰하고 기록한 감상문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향유하던 “인간적인 즐거움”을 잃고 이제는 모니터 앞에 앉아 끊임없이 그들이 인터넷에 의견을 남기고, 댓글을 달아댈 ‘사건’들이 터지길 기대한다.    

   자유처럼 느껴진 것이 실제로는 전혀 자유가 아니었을 가능성,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이 ‘객관적’으로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것임에도 이에 자족할 가능성, 노예제도 속에서 살면서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자신을 해방할 그 어떤 급박한 필요도 느끼지 않게 되어 참된 자유를 누를 가능성을 저버리거나 박탈당하게 될 가능성에 관한 것…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 근대]

   늘 바쁘게 지내는 편이다. 쉴새없이 해야할 일들이 솟아난다.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어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나도 시스템의 노예로서 충실히 복무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노예임을 깨달은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바쁨’을 기준으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가의 여부를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만들어낸 덧없는 목표들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퇴사를 결정하면서 이미 러닝 트랙에서 한 번 벗어나긴 했지만, 이후 다른 트랙에 (좀 더 의지적으로) 다시 진입한 덕분에.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바쁘게 지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이 아닌 다른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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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트럭이 날마다 공장을 떠난다. 하나는 창고와 백화점으로, 다른 하나는 쓰레기장으로.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첫번째 종류의 트럭만 주목하라고 우리를 훈련시켜왔다. 반면 두번째 종류의 트럭에 대해서 우리는 쓰레기 더미가 눈사태처럼 쓰레기 산으로부터 무너져 내려와 우리 뒷마당을 둘러싼 울타리를 뚫고 침범하는 경우에만 생각한다. 험한 지역, 더러운 거리, 도시 빈민굴, 망명자 수용소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제한 구역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런 쓰레기 산들을 현실에서든 생각에서든 찾지 않는다. 관광할 때 들떠서 모험을 하는 중에도 그런 지역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다닌다(또는 그런 곳을 피하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극히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한다. 즉 쓰레기를 보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든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p.58)

trash 

한 달 하기로 했던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가 이제 하루 남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 새벽 6시에 시작해 오후 3시~ 3시반 종료. 마포구를 맡고 있는 4개의 청소대행업체 중 한 곳 소속으로 청소 지역은 연남동, 서교동, 동교동, 노고산동, 대흥동, 신수동. 소위 “홍대 앞” 전 지역을 담당하는 순찰조의 작업원 역할. 순찰조는 기사, 작업원 2인 1조로 1톤 트럭으로 이동하며, 야간에 청소차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생활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는) 및 재활용폐기물과 마대에 담겨 나오는 특수폐기물을 수거한다. 그 외에도 정기적으로 음식물쓰레기통을 갈아주는 일을 하고, 회사로 직접 접수되거나 구청을 통해 전달되는 각종 쓰레기 관련 민원을 처리한다. 

굉장히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이것도 야간 작업조에 비하면 세발의 피). 1톤 트럭에 쓰레기가 가득 차면, 폐기물 처리장이 있는 차고지로 이동해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생활쓰레기, 재활용폐기물, 특수폐기물을 각각 따로 처리).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이 싸이클이 세 번 정도 돌아가는 데 쉴 틈이 거의 없다. 일반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쓰레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봉투가 제대로 묶여 있지 않거나 터지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냄새도 심하고, 옷도 금새 더러워지기 쉽다. 뭐,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작업복이 더러워지는 일은 드물다. 늘 군화를 신고 일한다. 군화는 가볍지 않아 움직임이 편하진 않지만, 특수폐기물의 경우 깨진 유리, 부러진 나무, 못 등 다치기 쉬운 것들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작업용 신발로 적격이다. 내용물에 따라 다르지만 100리터 쓰레기봉투는 대부분 무게가 꽤 나간다. 특수폐기물이 담겨 있는 마대는 혼자 들기 힘든 경우가 많아 기사님과 함께 트럭에 옮겨 싣는다. 폭염 속에서 무거운 짐을 바쁘게 옮기려다 보니 잠깐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난다. 그래서 이동하는 트럭 안에서 수시로 물을 마신다. 체중이 많이 줄었다.


도시는 매일 새로워지면서 단 하나의 결정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완전히 보존해 나갑니다. 바로 그저께의, 그리고 매달, 매년, 십 년전의 쓰레기들 위에 쌓이는 어제의 쓰레기 더미 형태로 말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p.149)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 회사에서 문서를 만들 때, 카페에서 글을 쓸 때,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때가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데 그것이 환경문제나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면 시원한 공간 속, 편안한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뭔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어제’ 거리에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고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렸더라도 당장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내가 그저 적당히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적어도 이번 기회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뭔가 온몸을 이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들여다 보고 있거나 TV나 인쇄매체의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다들 부질없는 소꿉장난에 열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물론 나도 그 “장난”에 자주, 기꺼이, 즐겁게 동참한다). 모두들 대단히 생산적이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고상하고 거창한 말들을 어설프게 조합한 댓가로 급료를 받는 것보다는 골목을 뛰어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 마음이 훨씬 편하다. 누군가를 속일 필요가 없는 일이고, 쉬이 감각의 극한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개미 안녕, 바퀴벌레 안녕, 구더기와 생쥐도 가끔 안녕. 동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이 다르지만,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는 매일 1순위로 순찰을 돌며 폐기물을 수거한다. 새벽 6시에도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쌓여있는 쓰레기 봉투들과 헤어짐이 아쉬워 서로 감싸안은 팔을 풀지 못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레네오 푸네스에 대한 보르헤스의 이야기는 마치 현대(성)의 기만적인 희망에 대한 임박한 부정을 예견하는 것만 같다.([쓰레기가 되는 삶들], p.41) 
나의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지요.(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픽션들],p.148)
 

차고지의 폐기물 처리장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수작업으로 폐기물 분류가 한 번 더 진행된다. 여기 계신 분들은 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하시는데, 언젠가 그 라디오에서 ELO의 Midnight Blue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쓰레기 더미, 그 사이사이로 허리를 숙인 미화원들, 그 풍경 위로 아름답고 몽환적인 멜로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혼자 여행 중 대구에 들렀을 때 동성로 타워레코드에서 Midnight Blue가 담겨져 있는 ELO의 ‘Discovery’ 앨범을 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CD플레이어로 ‘Discovery’를 들으며 매우 행복해 했던 기억. 대형폐기물이 쌓여있는 곳에서는 혹시라도 서핑보드가 버려지지 않았는지 매일 확인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주인공이 서핑 연습을 하다가 끌려와 보드복을 그대로 입은 채 쓰레기를 수거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화면 가득 푸른 바다. 말을 못 하는 두 연인이 수평선을 따라 함께 하염없이 걷고 있다. 가끔 쓰레기 더미 속에 CD와 비디오테이프들이 보인다.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의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버려진다. 

a scene at a sea

소비 사회의 소비자들은 쓰레기 수거인들을 필요로 하지만 소비자들 본인은 쓰레기 수거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들은 고생하기보다는 즐기도록 길러진 것이다. 그들은 권태로움과 고됨과 지루한 오락에 분개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들은 본인들이 하던 일을 대신해줄 도구를 찾도록 훈련받았다. 그들은 바로 쓸 수 있는 상품의 세계로, 즉석에서 만족감을 얻는 세계로 정신이 향하도록 조정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소비 생활의 기쁨인 것이다. 바로 그것이 소비주의가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더럽거나 고되거나 진저리나거나 그저 재미없는 ‘즐겁지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은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소비주의가 일련의 연속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쓰레기 수거인의 필요성은 증대하지만 쓰레기 수거인이 되려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p.114)

왜 외상 구매와 빚을 질 기회가 몹시 필요한 것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열성적으로 제공되며, 그토록 기쁘고 감사하게 수용되는가?…  그것은 우리의 욕구, 욕망이나 필요를 더 빨리 그리고 더 철저히 만족시켜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비록 휘몰아치는 수요 공급 게임의 속도는 다시 생각하는 것을 거의 허용치 않지만) 외상 거래의 용이성이 주는 주요한 이점은 더이상 욕구와 욕망의 필요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들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볼 때, 일단 외상으로 물건을 사고 빚 속에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면(‘빚을 지지 않으면 돈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빚을 지는 것은 ‘현명한 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외상과 빚은 욕망의 대상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것들이 쓰레기 더미로 가는 여정을 더욱 용이하고 빠르게 한다. 외상과 빚으로 사는 방법이 손 닿는 곳에 늘 있는데 왜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는’ 것에 매달려 있겠는가? 외상과 빚은 쓰레기의 산파 역할을 하며,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소비 사회에서 외상과 빚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가장 뿌리 깊은 근거이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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