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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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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분량이 2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것을 확인하고, 하루 밤을 새면 다 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렸다. [바람이 분다, 가라]도, [희랍어 시간]도 이렇게까지 오래 붙잡고 있진 않았다. [소년이 온다]는 페이지 한 장 넘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소설의 제목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소년은 ‘어떻게’ 오는가.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어딘가에 버려져, 몸에는 “빈 데 없이 흰 구더기가 들끓”은 채로, 다른 시체들과 함께 태워져 재가 되고, 그런데 “여전히 눈에서 피가 흐르는 채, 서서히 조여오는 거대한 얼음 같은 새벽빛 속에서” 어디로 움직여야 할 줄 모르다가… 그러다 ‘다시’ 오는 것이다, 소년은.

   꼭 이렇게 써야만 했을까? 꼭 이렇게 써야 했을 것이다. 5.18에 대한 자료들, 5.18을 다룬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다시 돌아보며, 실제 그 사건을 겪었던 광주 시민들과 대화를 나눈 후 작가 한강이 내렸을 판단에 대해… 그러니 그래야만 했을 것이라고, 책을 덮고 난 지금, 내가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아니 한 문장 한 문장을 겨우 읽어내려가다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 글을 쓰던 순간 작가 자신은 얼마나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써낸 것이다. 마침내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저녁이면 계엄군과 대치한 외곽 지역에서 총을 맞은 사람들이 실려왔다. 군의 총격에 즉사하거나 응급실로 운반되던 중 숨이 끊어진 이들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형상이 너무 생생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반투명한 창자들을 뱃속에 집어넣다말고 은숙 누나는 강당 밖으로 뛰어나가 토하곤 했다.”

   ”은숙 누나”와 “동호”가 시신들을 수습했던 바로 그 공간의 지척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예전 전남도청 자리에 현재 공사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내 일터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바로 그 장소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무엇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각 선택지의 기원을 따져보는 일. 이 ‘싸움’은 광주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80년 광주는 지금 밀양에 있고, 강정에 있다. 자주 대한문 앞에서, 오늘도 광화문 근처에서 우리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는 그런 싸움. Transforming. 적의 변화무쌍함. 만연한 각종 악성 바이러스들 속에서 그만한 변형의 문법을 사용해 또 거기에 맞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노동. 항상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빌면서, 고민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매일 출퇴근하며 그 길 위를 걷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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